불안감 휩싸인 삼성 “경제 이바지할 수 있도록…” 이례적 호소

입력 2019-08-30 04:01 수정 2019-08-30 19:09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 선고가 있었던 29일 삼성전자 서울 서초사옥 앞에 걸린 삼성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다시 재판을 받게 되면서 삼성은 전례 없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일본 수출 규제, 미·중 무역분쟁 등 대외 변수에다 리더십 부재 위기의식이 더해져 불확실성이 극대화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9일 이 부회장 대법원 판결 직후 입장문을 내고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업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머리를 숙였다. 이어 “삼성은 최근 수년간 대내외 환경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 왔으며, 미래산업을 선도하기 위한 준비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면서 “삼성이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 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과 성원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이 부회장 대법원 판결 직후 삼성전자가 발표한 입장문. 연합뉴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입장문을 낸 것이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본다. 그만큼 삼성전자가 절박함을 호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2016년 국정농단 사건 수사가 시작된 이후 이 부회장의 구속, 1·2심 판결 등이 있을 때 공식 입장을 낸 적이 없다. 이번 입장문을 낸 것은 과거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 사죄하는 동시에 정상적인 경영 환경에서 제대로 일 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은 다시 재판을 받고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최근 계속하고 있는 ‘현장 경영’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재판이 진행 중이고,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도 계속되는 상황에서 공개적인 대외 활동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 내부에서 느끼는 위기감은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3년 이상 수사와 재판이 반복되면서 리더십이 흔들렸고, 직원들의 사기도 크게 떨어진 상태라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오너의 비전, 경영진의 실행력, 직원들의 ‘할 수 있다’는 도전 정신이 삼성 경쟁력의 핵심이었는데 이게 많이 무너졌다”며 “위기 돌파를 위한 동력이 모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삼성전자의 ‘현재’가 아니라 ‘미래’다. 반도체, 스마트폰, 가전 등 삼성전자의 3대 사업 부문은 대표이사를 중심으로 문제없이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오랜 기간 사업을 하며 시스템을 갖춘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대형 인수·합병(M&A)이나 투자 계획 등을 차질 없이 진행하려면 전문경영인 선에서 결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 삼성전자가 이미 발표한 180조원 투자 계획이나 ‘반도체 비전 2030’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실적이 나빠지면 일선 부서는 투자를 줄이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최고결정권자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재계는 삼성전자의 불확실성이 커진 부분을 우려하면서 정상적인 경영이 가능하도록 배려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첨단 소재 및 기술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삼성이 비메모리, 바이오 등 차세대 미래 사업에서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판결이 삼성그룹 경영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정책적·행정적 배려를 부탁한다”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이번 판결로 삼성의 경영활동 위축은 개별기업을 넘어 한국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