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뇌물에 더 엄격해진 대법원의 메시지

입력 2019-08-30 04:01
대법원이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순실(최서원)씨에 대한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박 전 대통령 사건은 공직자의 뇌물 혐의를 다른 혐의와 분리해 선고하지 않은 절차적 잘못을 지적했고, 이 부회장과 최씨 사건은 삼성이 정유라씨에게 제공한 말 3마리 가격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도 뇌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2심에서 징역 25년이 선고된 박 전 대통령은 파기환송심에서 분리 선고를 하면 형량이 더 높아질 수 있다. 집행유예 상태인 이 부회장과 구속 중인 최씨도 뇌물 공여와 수수 액수가 커져 더 무겁게 처벌될 가능성이 있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최고 법원의 판단은 이처럼 엄했고 또 단호했다. 피고인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상고심의 핵심 쟁점은 뇌물 부분이었다. 원심은 말의 형식적 소유권이 삼성에 있었다는 이유로 말 값 34억원을 뇌물액에서 뺐고, 부정한 청탁은 대상이 명확해야 성립한다며 영재센터 지원금 16억원을 뇌물로 보지 않았다. 대법원은 이를 모두 뒤집었다. 말의 실질적 처분권을 최씨 측에 넘겼으니 뇌물이 맞는다 했고, 부정한 청탁의 대상과 내용이 구체적일 필요는 없다면서 묵시적 청탁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뇌물 판단의 기준과 범위를 원심보다 폭넓게 적용한 것이다. 이 판결에는 공직자 뇌물 범죄와 정경유착의 악습에 준엄한 잣대를 원하는 사회적 요구가 반영돼 있다. 부정이 통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정치권과 공직사회, 재계는 대법원이 한국 사회에 던진 메시지를 겸허히 받아들여 스스로 엄격한 기준을 설정하고 그릇된 관행을 바로잡아가야 할 것이다.

삼성은 다시 리더십 위기를 고민하는 시련에 맞닥뜨렸다. 일본의 경제보복 타깃이 됐고 경제전쟁의 선봉에 있는 터라 또 다른 불확실성을 감내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 판결 직후 “과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업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밝혔듯이 본연의 기업 활동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상황을 극복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재벌의 악습과 기업의 순기능을 이제 분리해 바라볼 시점이 됐다. 과거의 나쁜 행태는 근절해야 하지만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 기업이 감당하는 역할까지 함께 폄하하는 것은 어리석다. 대내외 악재가 산적해 있고, 수출부터 고용까지 기업들이 해내야 할 몫은 무척 많다. 기업들이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도록 지원하고 성원하는 분위기가 위축돼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