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자회사’ 줄다리기, 政 “고용 보장” 勞 “용역업체”

입력 2019-08-31 04:02
사진=게티이미지

최근 노동계 주요 이슈 중 하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자회사 고용’이다. 곳곳에서 ‘자회사 고용’으로 노정(勞政) 간 파열음이 일고 있다. 정부는 계속해서 자회사 고용을 장려하고 있고, 노동계는 이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하며 곳곳에서 파업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왜 자회사 고용을 밀어붙이는지, 노동계는 왜 파업을 불사하며 맞서고 있는지, 이에 대한 해법은 없는지 등을 알아봤다.

최근 노동계는 ‘자회사 고용’ 때문에 연일 파업을 벌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도로공사 사태다. 도로공사는 지난 6월 30일 자회사 한국도로공사서비스㈜를 설립해 용역업체 계약직원들을 자회사 소속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를 거부한 노동자 1500여명은 도로공사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두 달째 경부고속도로 서울요금소 톨게이트 위에서 농성을 벌였다. 앞서 요금수납원들은 2013년 도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들은 “도로공사와 외주용역 업체 사이에 체결된 용역 계약은 사실상 근로자 파견 계약이므로 2년의 파견기간이 만료된 날부터 공사가 요금수납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할 의무를 진다”고 주장했다. 결국 대법원은 6년 만인 29일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이 지난 6월 30일 경기도 성남 경부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한국도로공사의 자회사 고용에 반발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서울대병원 등 국립대 병원 5곳 파견·용역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자회사가 아닌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지난 22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했다.

한국공항공사(KAC) 청소·경비 담당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됐지만 이에 반발해 지난 26일 파업을 결의했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7월 초 총파업을 벌인 이유 중 하나도 자회사 고용이다.

노동계는 자회사 고용 방식의 정규직을 ‘무늬만 정규직’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자회사 설립을 통한 고용은 인력공급 회사를 통한 파견·용역과 같은 간접고용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모회사가 자회사와의 계약을 해지하거나 자회사가 폐업할 경우 이곳에 소속된 노동자들도 함께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자회사로 전환되더라도 실질적인 처우 개선은 거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한국잡월드의 자회사 한국잡월드파트너즈 직원들의 1인당 연간 복리후생비 예산은 모회사의 28.6%에 불과하다. 한국조폐공사 자회사인 콤스코시큐리티와 콤스코투게더도 모회사 대비 복리후생은 11% 수준이다.

하지만 정부는 ‘자회사 고용’ 방침에서 전혀 물러날 생각이 없다. 자회사 고용은 고용 안정을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분명히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 중 하나라는 것이다. 또 처우 개선도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정부가 2017년 7월 발표한 공공부문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파견·용역 노동자의 경우 노·사·전문가 협의를 거쳐 직접고용이나 자회사 고용 등의 방식을 선택하도록 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새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7월부터 올해 6월 말까지 정규직 전환이 완료된 15만6821명 중 자회사 고용이 2만9914명으로 전체의 19.0%를 차지했다. 특히 공사 등 공공기관에서 정규직 전환 완료 인원 7만5149명 가운데 자회사를 이용한 고용이 2만9333명으로 전체의 41%나 됐다.

정부는 더 나아가 최근 공공부문 자회사 고용 방식의 정규직 전환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실제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을 방문해 격려했다. 코이카는 자회사인 ㈜코웍스를 설립해 비정규직 노동자 302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고용부는 코이카가 모회사 수준의 근로 환경과 임금을 약속했고, 모회사에 직접 고용되면 임금피크제와 만 60세 정년 등의 적용을 받지만 자회사로 가면 정년이 만 63세로 조정되고 정년 이후에도 2년간 기간제(촉탁직) 근무가 가능하도록 했다고 소개했다. 고용부는 지난달 말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모범 사례를 모은 ‘2019년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사례집’을 발간하면서 모범 사례로 선정된 기관 15곳 중 세 군데를 ‘바람직한 자회사 운영·설립’으로 포함시키기도 했다.

이재갑(뒷줄 왼쪽 네 번째) 고용노동부 장관이 7월 29일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을 방문, 자회사인 ㈜코웍스를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직원들과 함께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려 보이고 있다. 노정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관련, 자회사 고용에 대해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정부는 모든 인력을 직접 고용할 경우 공공기관 비대화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으며, 자회사 고용이 실제로는 이전보다 안정적이라는 입장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기존 용역 업체는 1~2년이 지나면 바뀌지만 자회사는 공공기관과 경쟁 상대 없이 수의계약이 가능하므로 고용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노동자 시위와 관련해서도 도로공사는 “고속도로 수납원의 직접고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맞서고 있다.

많은 전문가는 ‘자회사 고용’과 관련해 노정 갈등은 상당히 오래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끊임없이 자회사의 고용 불안을 해소하고, 처우 개선도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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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많은 노동자가 자회사가 과거 민간 위탁회사와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며 “공공기관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모두 직접 고용하기에는 세금 투입과 인력 관리 면에서 어려움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문제를 풀기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다만 “정부가 모범적인 자회사의 사례를 계속 만들고 제시도 해줘야 한다”며 “이와 함께 자회사이지만 고용 안정성이 있고 지속 가능하다는 점에 대해 노동계를 잘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기획조정실장은 “원청에서 임금체계를 다양화해 노동자들이 자회사로 갈 것인지 원청으로 가서 다른 임금체계 적용을 받을 것인지 선택하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오 실장은 “중장기적으로는 원청에 정규직으로 들어왔느냐 비정규직으로 들어왔느냐에 따라 임금이 달라지는 현재 체제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일 중심으로 임금이 주어지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일 중심의 노동시장 질서 재편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