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9%대 예산 증가율을 가져가며 500조원대 예산 시대를 열었다. 2년 연속으로 예산을 대폭 늘리기는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기나긴 경기 부진의 터널, 미·중 무역전쟁, 일본 경제보복이 적자를 감수하고라도 예산지출을 확대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금융위기 이후 ‘최대의 적자재정’으로 경기 부양에 승부수를 던질 방침이다. 과감한 혁신 성장과 복지 확충에 무게중심을 뒀다. 경제 위기를 돌파하는 수단으로 예산 확대, 경기 부양을 선택한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내년도 정부 예산안으로 올해 본예산(469조6000억원) 대비 43조9000억원 늘린 513조5000억원을 편성했다고 29일 밝혔다. 지난해 전망했던 2020년도 예산안 규모(504조6000억원)보다 10조원 가까이 몸집을 키웠다. 당초 7.3%로 예상했던 증가율은 9.3%까지 올라서며 2년 연속 9%대를 찍었다. 예산 증가율이 2년 연속 8%대 이상을 기록하기는 금융위기(2008~2009년) 이후 처음이다.
특히 정부는 큰 폭의 적자를 감내하기로 했다. 내년 총수입 증가분은 1.2%에 그친다. 내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37.1%)보다 2.7% 포인트 증가한 39.8%로 추산된다.
국가채무를 늘리더라도 예산을 많이 풀려고 한 이면에는 한국 경제를 둘러싼 ‘엄중한 상황’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 경제를 뒷받침하는 제조업 가동률은 뚝뚝 떨어지는 중이다. 수출은 미·중 무역전쟁 여파가 겹치면서 지난달까지 8개월 연속 내리막이다. 일본은 경제보복으로 위협하고 있다.
정부는 지금 경기를 부양해야 2022년 이후 경기 회복 흐름을 탈 수 있다고 본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엄중한 상황”이라며 “경제활력 회복을 위해 감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확장적으로 예산을 편성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반영하듯 내년 예산안은 경기 부양용 재원 확대에 초점을 맞췄다. 산업·중소기업·에너지 예산을 올해보다 27.5%나 늘렸다. 연구·개발(R&D) 예산 역시 17.3% 확대한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키 위해 편성한 2조1000억원 규모의 부품·소재 R&D 예산도 여기에 들어간다. 이와 함께 경기 부진을 견뎌낼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도 챙겼다. 복지성 예산인 보건·복지·노동 예산은 올해 대비 12.8% 늘었다. 특히 일자리 분야 예산 규모는 21.3%나 뛰었다.
다만 복지 예산을 늘리면서 증세를 고려하지 않았다. 향후 재정 부담이 커질 수 있는 대목이다. 홍 부총리는 “증세 문제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전슬기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