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관세전쟁 격화 땐 ‘포치’ 넘어 ‘포바 시대’ 온다

입력 2019-08-29 04:07

미국이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30% 관세를 매기면 ‘포치’(破七·위안화 환율이 달러당 7위안을 돌파하는 현상)를 넘어 ‘포바’(破八·위안화 환율이 달러당 8위안 위로 올라서는 현상)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중 무역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한 결과다.

시장에선 중국의 부진한 경기지표를 감안하면 최소 1년간 포치가 이어진다고 본다.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낮춰 수출기업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포치 고착화’만으로도 한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고 우려한다.

미 경제뉴스 전문방송 CNBC는 27일(현지시간) “내셔널호주은행(NAB) 외환전략팀이 지난 주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시나리오대로 중국산 수입품에 매기는 관세율이 30%까지 오르면 (달러당) 8.19위안을 넘어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달러당 8.28위안까지 올랐던 2005년 환율에 매우 근접한 수치다. NAB는 미국이 모든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극단의 상황을 가정한 수치라고 덧붙였다.

시장에서는 이미 ‘포치 장기화’를 확신하고 있다. 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향후 1년간 달러당 7.1위안 수준이 유지될 것으로 예측했다. ING그룹은 한술 더 떠 위안화 환율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아이리스 팡 애널리스트는 “올해 하반기까지 달러당 7.05~7.50위안 범위 안에서 등락을 거듭할 것”이라며 “위안화는 한 달간 달러당 7.18위안, 내년 말 7.30위안, 2021년 말 7.20위안 수준에서 거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미국과 중국이 무역협상의 여지를 남겼지만, ‘이벤트’에 그친다고 평가한 것이다.

‘포치 장기화’의 이유는 많다. 중국은 미국의 관세에 대응해 환율 상승(위안화 가치 약세)으로 수출기업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려 한다. 지지부진한 무역협상이 시장에 불확실성을 가중시켜 달러화 가치 강세(위안화 약세)도 부추기고 있다.

부진한 중국의 경기지표도 위안화 약세에 힘을 싣는다. ING에 따르면 지난달 말 중국의 수출용 포장지와 관련 있는 종이 생산 수익이 1년 전보다 23.7% 감소했다. 같은 기간 기업의 매출채권 평균 상환기간은 54.2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일 늘었다. 채권 상환기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시중에 현금이 부족해지고 폐업 위험도 커진다는 의미다. ING 측은 “중국 인민은행이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높은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해 양적완화로 심각한 위안화 약세를 초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포치 고착화로 한국이 ‘달러 유출’에 봉착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경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최악의 경우 홍콩 역외환율조차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변동폭이 커지면 낮은 확률로 ‘포바’까지 가게 될 수 있다. 그때는 원·달러 환율도 1500원을 돌파할 것”이라며 “한국은 수출제품의 가격경쟁력 효과를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자금 유출에 시달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중국의 주력 수출품인 곡물이 동남아시아나 캐나다 멕시코로 들어가는 ‘우회 수출길’을 미국이 모두 끊어버릴 수도 있다. 중국이 수출에 타격을 받으면 ‘포치’가 지속돼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에 있는 달러들도 모두 미국으로 회수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