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배제한 수출무역관리령을 결국 발효시켰다. 식품과 목재를 제외한 대다수 품목이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 대상으로 바뀌었다. 일본산 소재·부품을 수입하는 기업은 불편을 감수하게 됐다. 그렇다고 당장 수입이 막히는 상황은 아닌데, 그것이 더 고약하다. 일본 정부는 수출이 계속될지, 끊길지, 끊긴다면 언제 어떤 범위가 될지 예측할 수 없도록 무역의 길목을 틀어쥐었다. 한국 산업 전반에 커다란 불확실성을 드리웠다. 비열한 행태다.
일본 정부는 외교 문제에 무역을 끌어들였다. 호혜적이어야 하는 국제 교역질서를 정면으로 위배했다. 안보 때문에 수출관리를 하는 것이니 보복이 아니라고 강변하면서 동시에 “징용 배상 판결을 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서로 배치되는 두 주장은 모두 잘못됐다. 전략물자 통제 시스템은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치밀하다는 게 국제적 평가에서 확인됐고,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가 사법부 판결에 개입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빈약한 명분과 무리한 요구를 앞세운 채 한국의 신뢰 문제를 거론하는가 하면 심지어 “역사를 바꿔 쓰려 한다”는 망발까지 내놓았다. 미래지향적 관계를 만들어갈 의지가 있다면 일본 정부는 이제 멈춰야 한다. 국제 질서에 반하는 수출 규제를 철회하고 외교적 해결의 테이블에 나와야 할 것이다.
공은 일본 쪽에 넘어가 있다. 한국 정부는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국무총리와 대통령까지 여러 차원에서 대화의 손을 내밀었다. 유감스럽게도 이 손을 잡으려는 일본의 움직임은 지금까지 보이지 않는다. 모욕에 가까운 무시로 일관했다. 반전이 없다면 선택지는 일본이 시작한 경제전쟁에 적극 대응하는 것뿐인데, 이는 결코 나쁜 상황인 것만은 아니다. 최근 정부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잇따라 발표하며 기업과 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데 사활을 걸었다. 대통령과 장관들이 수시로 기업 현장을 찾아다니고 있다. 위기를 인식한 현대자동차 노사는 8년 만에 무분규로 임단협을 끝냈다. 위축돼가던 경제에 건강한 자극을 주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시장이 가장 싫어한다는 불확실성에 맞닥뜨렸지만 이를 경제에 꼭 필요한 모멘텀으로 바꿔낸다면 얼마든지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사설] 백색국가 배제 강행한 일본… 위기를 기회로 바꾸자
입력 2019-08-29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