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학당의 당훈은 ‘욕위대자 당위인역’(欲爲大者 當爲人役)이었습니다. ‘크고자 하는 자는 남을 섬겨야 한다’는 의미죠.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인 이곳에선 백성을 섬기는 겸손한 지도자를 배출했습니다.”
28일 서울 중구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에서 홍승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원이 이렇게 말하자 설명을 듣던 20여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기독교언론포럼이 주최하고 서울시가 후원해 열린 ‘한국기독교 역사투어’ 현장에서다.
늦여름 더위가 기승이었던 이날은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어섰다. 소나기가 가끔 내렸지만, 더위를 식히기엔 역부족이었다. 무더위 속에서도 참가자들은 4시간 동안 이어진 역사여행에 빠져들었다. 평소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들이 흥미를 더했다.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에서 출발한 투어는 정동교회와 덕수궁 중명전, 예원학교, 구 러시아공사관, 이화여고 유관순기념관을 거쳐 대한성공회 성가수녀원까지 이어졌다.
정동교회에서 홍 연구원은 “소박하게 지은 이 교회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오르간이 설치됐고 서양식 결혼식과 연극공연도 최초로 열렸다”면서 “1896년 명성황후가 시해된 뒤 추모예배를 드렸던 유서 깊은 장소”라고 했다. 그가 “1897년 교회에서 ‘여성에게 교육하는 것이 옳은가’를 주제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면서 “서재필 선생은 교육에 찬성했고 윤치호 선생은 반대하는 등 분위기가 뜨거웠다”고설명하자 참가자들은 놀라는 표정이었다.
일반에 내부를 공개하지 않던 성가수녀원은 이날 투어 참가자들을 수녀원 마당으로 초청했다. 흔치 않은 경험을 한 참가자들은 대한성공회가 조선의 독립을 위해 했던 역할 등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도 기념사진을 찍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방승미(44·여)씨는 “100여년 전 열강의 횡포에 시달리던 우리나라와 지도자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면서 “지금 우리나라도 강대국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