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가도 ‘와! 너무 잘 생겼네’ 하는 말을 자주 들으며 자랐다. 좀 커서도 ‘여자 친구들이 많이 따르겠다.’ ‘코가 오뚝하고 눈이 너무 예쁘다.’ ‘큰 키에 꼭 연예인 같아!’ 등의 말을 듣다 보니 어느새 외모는 내 삶의 기준이 됐다. 고등학교 때는 인근 여고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성격도 모나지 않고, 공부도 적당히 잘해서 나는 진짜 잘난 사람으로 생각하며 살았다. 고등학교 때 공부도 잘하고 마당발인 친구가 자기 자랑을 해서 ‘그래, 친구 많아서 좋겠다. 못생긴 게, 친구라도 많아야지’ 했고 성적 자랑하는 친구에게 ‘그래, 성적 잘 나와서 좋겠다. 못생겼으니 공부라도 잘해야지’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나의 모든 판단 기준은 외모였다.
외모가 전부이다 보니 사람을 만나면 ‘얼짱 각도’인 45도로 얼굴을 돌리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사람이 없어도 고개를 돌리는 버릇까지 생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얼굴값 하네’라는 말이 생각나며 ‘나도 외모만 번지르르하지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잖아?’라는 생각이 들며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때부터 말과 행동에 특히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결국 ‘잘 생기고 착한 애’라는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가끔 외모로 인정을 받지 못할 상황이 되면 내 가치관과 삶의 뿌리까지 흔들리기 시작했고 존재 의미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외모에 잡혀 살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힘들어져 갔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어느 분의 소개로 한마음교회 생활관에 들어갔다. 남중, 남고를 나온 나는 캠퍼스 생활에 대한 로망이 유독 컸다. 그러나 새벽기도와 잦은 예배, 생활관 규칙이었던 ‘연애 금지’는 그동안 꿈꾸어 왔던 핑크빛 캠퍼스 라이프를 흙빛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같이 사는 형들은 잘생기지도, 그렇다고 뭐 하나 잘 난 것도 없는데 세상 사람들과 너무 달랐다. 무엇이 형들을 이렇게 변하게 했는지 너무 궁금했다. 내가 아는 예수님과 형들이 아는 예수님은 꼭 ‘동명이인’ 같았다. 형들에게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 분이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형들의 삶을 본 나는 새로운 각오로 본격적으로 새벽기도에 따라가며 예수님께 집중했다. 신화나 전설만 같던 ‘성경’이 새로 보였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에게 큰 충격을 받았다. 하나뿐인 생명을 아낌없이 부활에 건 사람들의 삶을 확인하고 그 제자들에게 초점을 맞춰 보았다. 예수님의 부활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모른 척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됐다. 제자들은 진짜 예수님의 부활을 본 사람들이었다. 그때 모든 의심이 사라지며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확실히 알게 됐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서니 예수님을 믿기는커녕 그분 자리까지 가로채고 있는 내 모습이 보여 마음이 무너졌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하고 내가 주인 되었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영접했다.
외모의 노예가 돼 주변의 평가에 목숨 걸며 힘들게 살았던 내게 드디어 기쁨이 임하며 외모로 사람을 판단, 비교하던 것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할 때 가장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고 전도에 올인하기 시작했다. 내가 다가서기 부담스럽던 몸에 문신한 친구와 순식간에 친해지며 부활의 복음을 반복적으로 전해 결국 기쁘게 예수님을 영접하게 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됐던 외모가 이제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열고 복음을 전하는데 사용될 수 있어 너무 감사했다.
지금 나는 교회 영상팀에서 주님과 함께하는 지체들의 최고의 모습을 남기기 위해 온 정성을 다해 발로 뛰어다닌다. 외모로 대학에서 꽃을 피우겠다고 생각했던 내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믿고 인생에서 가장 눈부시고 아름다운 진짜 꽃을 피우고 있다. 외모만 추구하던 나를 사명자로 불러주시고 변화시켜주신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린다.
한세현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