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생활형편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금융위기 이후 10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웬만해서는 크게 줄이지 않는 교통·통신비와 의류비에 대한 지출 의사도 기록적으로 낮아졌다.
한국은행은 이달 소비자동향조사 결과 생활형편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가 89로 지난달보다 3포인트 하락했다고 27일 밝혔다. 금융위기 충격으로 한국 경제가 한껏 움츠러들었던 2009년 3월(80) 이후 10년5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전망 CSI는 소비자가 현재와 비교해 6개월 뒤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보여주는 수치다. 100보다 높으면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낮으면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이전에 비해 수치가 낮아지면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늘었음을 의미한다.
생활형편전망 CSI가 90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09년 3월 이후 처음이다. 2017년 11월(104) 이후 꾸준히 하락한 이 지수는 지난해 6월(99) 100선이 무너진 뒤 같은 해 11월 90을 찍고 반등했었다.
그동안 70~80대를 오르내리던 향후경기전망 CSI는 지난달보다 4포인트 떨어진 66으로 2016년 12월(65) 이후 2년8개월 만에 최저를 찍었다. 70을 밑돌기는 2017년 1월(67) 이후 처음이다. 가계수입전망은 전월보다 2포인트 하락한 94로 2009년 4월(92) 이후 10년4개월 만에 최저다.
경제 상황에 대한 판단이 더 나빠지면서 지출 심리도 전반적으로 얼어붙었다. 불황이라고 마냥 안 쓸 수 없는 교통·통신비의 지출전망 CSI는 지난달보다 각 1포인트 내린 106으로 2009년 3월(100) 이후 10년5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의류비 지출전망은 같은 기간 94에서 93으로 내려가며 2009년 4월(91) 이후 10년4개월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필수 항목들에 대한 지출 계획이 금융위기 때만큼 위축된 셈이다.
지출 비중이 점점 커지는 여행비는 이달 지출전망 CSI가 5년8개월 전인 2013년 12월(87) 수준까지 내려갔다. 지난달(92) 대비 하락폭이 여느 지출항목보다 컸다는 점도 눈에 띈다.
긴축에 대한 저항이 상대적으로 큰 의료·보건비는 비교적 큰 폭인 2포인트 하락한 110을 기록했다. 의료·보건비는 보통 경기가 나빠지더라도 지출 수준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한 항목이다. 지난해 중순부터는 전달 대비 2포인트씩 빠지는 경우가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늘었다. 교육비는 지난달과 같은 100으로 CSI 조사가 분기 단위에서 월 단위로 바뀐 2008년 7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지속했다. 외환위기 충격이 컸던 1998년에는 91(3분기)까지 내려간 바 있다.
생활형편전망, 소비지출전망, 향후경기전망 등 6개 주요 CSI를 종합한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5.9에서 92.5로 3.4포인트 떨어지며 2017년 1월(92.4) 이후 31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한은 경제통계국 통계조사팀은 “8월 소비자심리지수 하락은 일본의 수출규제, 미·중 무역분쟁 심화, 수출 부진, 주가 하락 및 환율 상승 등의 영향으로 경기 및 가계 재정상황에 대한 인식이 악화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년간 소비자물가상승률에 대한 생각인 물가인식은 이달 2.1%로 지난달보다 0.1% 포인트 낮아졌다. 향후 1년간 소비자물가상승률에 대한 판단인 기대인플레이션은 0.1% 포인트 내린 2.0%로 나타났다. 두 수치 모두 각각 조사를 시작한 2013년 1월과 2002년 2월 이후 최저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