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존슨(사진) 영국 총리가 ‘브렉시트 위자료’로 불리는 재정분담금 정산 불이행을 앞세워 다시 한 번 유럽연합(EU)에 재협상을 압박했다.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딜 브렉시트와 영국 의회 정회의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존슨 총리는 26일(현지시간)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폐막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브렉시트 합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영국과 EU 사이에 의견 차이가 상당하지만 나는 낙관하는 쪽에 좀 더 무게를 둔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브렉시트 합의를 원하지만 EU에 달려 있다. 가장 큰 쟁점인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 사이의) 안전장치가 폐기돼야 한다. 필요하다면 노딜 브렉시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특히 존슨 총리는 의원들이 브렉시트 정책에 반대한다면 영국 의회 정회도 불사할 것으로 보인다. 의회 정회 가능성에 대한 법률 검토가 진행되는 상황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영국인들은 투표에서 다수결로 EU 탈퇴를 선택했다. 이 사안에 대해 충분히 대화를 나눴다고 생각한다”면서 “영국인들은 브렉시트 뉴스가 매일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에 지쳐 있다”고 즉답을 피했다. 이에 대해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은 존슨 총리가 의회 정회에 긍정적이라고 해석했다.
존슨 총리는 또 노딜 브렉시트가 될 경우 영국이 390억 파운드(약 58조원)에 달하는 위자료를 지급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이에 대해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더라도 위자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밝혔다. EU 집행위 미나 안드리에바 대변인은 “영국이 회원국일 때 했던 모든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면서 “이는 노딜 브렉시트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안드리에바 대변인은 EU가 위자료를 받아내기 위해 영국을 상대로 소송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법적 조치를 위협하기보다는 지불해야 할 금액을 내는 것이 상호 신뢰 위에서 새로운 관계를 잘 시작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한편 영국 제1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될 경우 영국이 미국에 종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코빈 대표는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기고한 글에서 “노딜 브렉시트는 트럼프 딜 브렉시트”라고 주장했다. 그는 “노딜 브렉시트가 되면 주권을 확립하기는커녕 영국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의료보험)를 이용해 이익을 보려는 미국 기업의 손아귀에 맡기는 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코빈 대표는 노딜 브렉시트를 막기 위해 다른 야당들과 연대할 계획이다. 지난 14일 스코틀랜드국민당(SNP)과 자유민주당, 웨일스민족당, 녹색당 등 다른 야당과 보수당 내 노딜 브렉시트 반대 의원들에게 서한을 보내 오는 9월 3일 하원이 개회하면 정부 불신임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총리 불신임안이 가결되면 자신이 임시 총리를 맡아 10월 31일 브렉시트 시한을 연기하고 이후 총선을 치르겠다는 계획까지 세워놓았다.
코빈 대표의 회동 제안을 다른 당들이 일단 수용해 만남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벌써부터 그가 임시 총리가 되는 것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어 노딜 브렉시트를 막기 위한 연대가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