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이 이름도 낯선 ‘지속가능채권(Sustainability bond)’에 주목하고 있다. 발행도 잇따른다. 지속가능채권은 ‘소셜본드(Social bond)’와 ‘그린본드(Green bond)’로 이뤄진다. 소셜본드는 저소득층과 중소기업 지원 등 사회문제 해결에 목적을 두고 발행하는 채권이다. 그린본드는 환경 개선이나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투자할 자금을 모으는 데 사용된다. 조달한 자금은 사전에 지정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용도로만 쓰여야 한다.
지속가능채권 발행은 일석이조로 여겨진다. 사회문제에 책임을 다한다는 명분을 잡는 동시에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지속가능채권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채권 검증을 하는 전문평가기관을 육성하는 등 정책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한금융지주는 지난달 30일 국내 금융지주사로는 처음으로 지속가능채권을 발행했다. 5억 달러(약 6040억원) 규모로 만기는 10년6개월이다. 신한은행도 지난 4월 15일 4억 달러(약 4840억원) 규모의 지속가능채권 발행에 성공했었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10월 16일 국내 은행 최초로 지속가능채권을 발행했다. 이어 올해 1월 28일과 6월 25일에도 총 9억5000만 달러(약 1조1500억원) 상당의 지속가능채권을 선보였다. 우리은행과 KEB하나은행은 지난 5월 7일, 1월 23일에 각각 4억5000만 달러(약 5450억원), 6억 달러(약 7270억원) 규모의 지속가능채권을 시장에 내놓았다.
금융회사들이 앞다퉈 지속가능채권을 발행하는 배경에는 해외시장 진출이 자리 잡고 있다. 사업을 확장하려는 금융회사는 해외에서 ‘이미지 관리’가 중요하다. 최근 들어 해외 기관투자가나 대형 연기금 같은 큰손들은 기업을 평가할 때 사회책임경영(ESG)을 중요하게 고려한다. ESG에 가중치를 두고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세계 최대 규모의 일본 공적연기금(GPIF)이 대표적이다.
ESG는 기업이 환경이나 사회, 지배구조 부문에서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지속채권 발행도 ESG 사업 중 하나다.
이런 흐름에 힘입어 지속가능채권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지난 6월 20일(현지시간) 전 세계 지속가능채권 거래액이 올 상반기에 지난해 전체보다 배 이상 많은 164억 달러(약 19조8600억원)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한국이 총 거래액의 16%를 차지했는데 이를 견인한 것은 시중은행”이라고 분석했다.
금융권의 지속가능채권 발행엔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로 발행금리가 내려가 가격 부담도 줄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27일 “지속가능채권을 발행하는 것 자체가 발행사의 높은 신용등급을 말해줘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투자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며 “하반기에도 지속가능채권 발행 계획이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시장이 커지는 만큼 정부 차원의 지원사격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지속가능채권 시장 확대를 위해 발행·투자·공시까지 표준화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해외 현지에서 요구받을 수 있는 ESG 공시기준에 맞춰 자국 기업의 투자 활동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돕겠다는 취지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한국도 EU처럼 회계 규정상 ESG 요소를 포함한 표준화 작업이 이뤄져야 하고, 채권 검증을 위한 전문평가기관도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린본드의 경우 국내에 명확한 평가기준조차 없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