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선민] 소재·부품 對日 적자 줄일 수 있다

입력 2019-08-27 04:02

일본 정부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사용되는 핵심 소재 3개 물품의 수출규제 발표로 촉발된 한·일간 소재·부품전쟁이 시작된 지 2개월이 돼 간다.

그동안 우리 관련 기업들은 동분서주하면서 슬기롭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도 관련 현장을 점검한 뒤 소재·부품산업 육성을 위한 지원 자금을 올 추가경정예산에 신속히 반영하고, 내년 본예산에는 1조~2조원을 편성하기로 했다. 이러한 일련의 대응을 보면서 대다수 국민들은 큰 박수를 보내는 한편,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일본과의 소재·부품 전쟁에서 수 년 내에 승리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

하지만 대(對) 일본 소재·부품 무역수지를 살펴보면 일본과의 소재·부품 전쟁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이번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려면 한·일간 소재부품 무역의 전체적인 변화 추세는 물론 품목별 개선 상황 등도 면밀하게 분석하고, 이에 맞는 정밀한 대책을 수립해 대응해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 소재·부품산업의 글로벌 무역수지는 2010년 779억 달러를 달성한 데 이어 2014년 최초로 100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2018년에는 1390억 달러(수출 3162억 달러, 수입 1772억 달러)를 돌파했다. 소재·부품산업의 무역수지만 놓고 보면 중국, 독일, 미국, 일본에 이어 5대 강국이 됐다.


그러나 대 일본 소재·부품 무역수지는 교역을 시작한지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과의 소재·부품 무역적자는 2010년 243억 달러로 최고 정점에 달했다가 2014년에 164억 달러로 크게 줄어든 이후 2018년 152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2014년 이후에는 매년 140억∼160억 달러의 적자규모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더 이상 개선되지 않고 고착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다행인 것은 소재·부품 대일 적자 중에 소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2010년 58.3%에서 2014년 52.3%, 2018년 44.0%로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소재·부품의 대 일본 만성적자는 무역적자가 큰 12개 품목(2018년 적자의 약 78%)을 선정해 2010∼2014년과 2014∼2018년간 무역적자 개선 결과를 살펴보면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다.

부품분야의 트랜지스터 및 반도체 소자, 전기 공급 및 제어장치, 펌프 및 압축기, 정밀전자, 정밀기기, 반도체제조용 기기 등은 적자가 2014년 이전 큰 폭으로 개선되다가 2014년 이후 정체를 보이고 있지만 전자집적회로, 광학기기 등은 적자가 2014년 이전까지 지속되다가 2014년 이후 큰 폭으로 개선되고 있다.

소재분야는 정밀화학과 유기화학뿐 아니라 철강, 플라스틱까지 2014년을 전후해 모두 개선되는 추세에 있다. 특히, 적자 비중이 큰 소재 4개 품목(정밀화학, 플라스틱, 철강, 기초유기화학)이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어 무척 고무적이다.

소재·부품 적자를 축소시킨 주요 요인은 기술개발, 외국인 투자유치, 정부 정책 등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기술개발을 위한 대규모 장기 투자였다. 다시 말해 ‘언 발에 오줌누기식’으로 찔끔찔끔 투자하는 것으로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부품보다 소재의 기술개발은 더 어렵다. 소재 개발을 위한 재원은 정부와 기업이 합동으로 펀드를 마련해, 정부자금은 기술개발 실패의 위험으로 인한 손실을 보전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품 개발은 소재 개발보다 성공 가능성이 크고 투자 회수 기간도 짧기 때문에 이에 소요되는 재원은 민간자금과 금융자본을 유입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기업은 중소·중견기업과 구매조건부 기술개발을 활성화해 기술개발 상생협력을 촉진하고, 아직 일본과 기술격차가 큰 소재 전반, 정밀화학·정밀기계 부품에 대해서는 외국인투자 유치활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또 장기화에 대비해 독일, 벨기에 등으로 수입선 다변화를 적극 추진해 나가야 한다.

이처럼 정부, 기업, 연구원 등 산학관연이 혼연일체가 돼 대응한다면 일본과의 소재·부품 전쟁에서 승리할 것으로 확신한다. 제갈공명이 적벽대전에서 동남풍의 도움으로 승리한 것처럼 우리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일본과의 소재·부품 전쟁에서 동남풍이 되리라 믿는다.

김선민 전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