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이 미뤄왔던 올해 독도방어훈련을 25일 이틀 일정으로 시작했다. 훈련 명칭을 ‘동해 영토수호훈련’으로 바꿨고 훈련 규모도 대폭 확대했다.
이번 훈련은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발표한 지 사흘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지소미아 종료 선언에 이어 독도 수호를 위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강수를 둔 것이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인한 싸움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어서 한·일 간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질 전망이다. 일본 정부가 오는 28일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가) 한국 배제 조치를 예정대로 시행하고 추가 보복 조치까지 내놓는다면 한·일 갈등은 전방위로 확산, 격화되는 2라운드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해군은 “오늘부터 26일까지 동해 영토수호훈련을 실시한다”며 “훈련에는 해군·해경 함정과 해군·공군 항공기, 육군·해병대 병력 등이 참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독도를 비롯한 동해 영토수호 의지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훈련 명칭을 동해 영토수호훈련으로 명명했다”고 강조했다.
독도방어훈련을 확대 실시하는 것은 일본에 대한 강경 조치로 해석된다. 군은 지난 6월에 훈련을 실시하려다 당시 한·일 갈등 국면에서 양국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 등을 감안해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독도방어훈련은 매번 일본이 강하게 반발하는 등 양국 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경제보복 조치를 철회하지 않고 한국 정부의 대화 요청에도 응하지 않음에 따라 군이 훈련을 더 미룰 이유가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청와대는 일본만을 겨냥한 훈련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동해 영토수호훈련은 그야말로 우리의 주권과 영토를 수호하기 위한 훈련”이라며 “일본 한 나라를 생각해두고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날짜를 잡는 데 있어 기상 상황도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고, 제반 상황들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정부가 지소미아 파기와 연계해 훈련을 시행한 것은 당분간 양보 없이 일본과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겠다는 의도”라며 “당분간은 한·일 대치 국면이 이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고 전망했다.
오는 28일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조치를 시행하게 되면 한·일 갈등 사태는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일본은 그동안 모호하게 남겨뒀던 구체적인 수출 규제 품목을 명시할 수 있다. 또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종(고순도 불화수소·포토 레지스트·플루오린 폴리이미드)에 대한 수출 통제를 더 강화할 수도 있다. 일본 정부는 이달 두 차례에 걸쳐 포토 레지스트 수출은 허가했으나 고순도 불화수소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수출 허가는 내주지 않고 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우리가 벼랑끝 전술을 불사하고 있고, 일본도 대화 의지가 약해 해법을 찾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개별 규제 품목을 추가하는 등 압박을 강화하면 한·일 관계는 상당 기간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