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국자와 주걱

입력 2019-08-27 19:39

얼마 전에 최병광 카피라이터의 강연을 들었다. 그는 우리에게 휴가 계획이 있냐고 묻더니 휴가란 ‘쉼결’이라고 하였다. 바람결 마음결 숨결 등 ‘결’자가 들어간 단어에서는 은은한 아름다움과 고운 향기가 배어난다.

세상을 녹일 듯한 지난 7월의 폭염에 숨이 턱턱 막혔다. 일상을 잠시 벗어나 나를 위해 짧은 ‘쉼결’을 마련하고 싶었다. 간단하게 짐을 꾸려 몸도 마음도 가볍게 드디어 강화도로 출발! 평일이라 그런지 차도 막히지 않았고, 쌩쌩 기분 좋게 달릴 수 있었다.

목적지는 강화군에 있는 ‘국자와 주걱’이라는 조그만 책방이다. 이곳은 잠시 여행 와서 책을 보는 곳이다. 편히 쉬며 ‘독서여행’을 할 수 있는 시골집이다. 제일 먼저 담쟁이가 눈에 들어왔다. 초록색 넝쿨들이 뜨거운 벽을 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찡했다. 시(詩) 한 편이 내 기억의 벽을 타고 올라왔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시 ‘담쟁이’ 중에서

‘담쟁이’는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 우리 모두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시가 아닌가 싶다. 초록 담쟁이 사이로 삐죽이 얼굴을 내민 다섯 글자. ‘국자’와 ‘주걱!’ 이름이 참 맘에 들었다. 이 독특한 이름은 이웃에 사는 함민복 시인이 지어줬고 어떤 손님이 하얀 벽에 붓글씨로 책방 이름을 써주었다고 한다. 책방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여주인장의 미소는 들꽃같이 온화했다. 평상이 놓여있는 마당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작은 공간에 알록달록 책들이 진열돼 있었다. 빼곡하게 서서 나를 반갑게 환영해주었다. 이런 공간이 ‘설렘’과 ‘쉼결’ 그 자체였다.

저녁에는 자연밥상을 받았다. 호박 고추 두부를 넣은 된장찌개. 잘게 썬 토마토와 상추 양파 버무리, 짭조름한 무장아치….

소박한 진수성찬이다. 정말 자연의 맛 그대로였다. 워낙 식성이 좋은 편이지만 그야말로 밥맛이 꿀맛이었다.

식사 후에는, 눈에 띄는 책을 입맛대로 골라서

뒹굴뒹굴 방에서 굴러다니며 읽고,

낮은 책상 위에 책을 올려놓고 읽고,

마당에 나가 나무 의자에 앉아서도 읽고,

뒤뜰에 흔들 그네를 타면서도 읽고…

비록 1박 2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여운이 길 것 같다. 주인장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다가 다시 돌아갔다. 진열된 책 들 중에 영양가가 담뿍 담긴 책 세 권을 샀다.

‘마음을 전하고 싶은 친구와 이웃에게 이 쉼터의 느낌을 포장해서 선물해야지. 국자와 주걱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퍼주는 삶을 살아야지. 좋은 생각들이 내 주위에 사르륵 퍼져 나가도록 더욱 노력해야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커피소년의 ‘행복의 주문’ 이라는 노래가 울려 퍼졌다.

우울한 사람도 지친 사람들도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행복해져라!

일상으로 돌아오는 차가 가볍게 달린다. 나는 조금 더 행복해진 것 같다.

이미향 작가 <‘나는 스토리텔링이다!’의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