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 유지요법 한 달 250만원”… 신약 급여화 서두르자

입력 2019-08-25 18:50
혈액암 치료환경 개선 토론회 참석자들.왼쪽부터 전미옥 쿠키뉴스 기자, 백민환 한국다발성골수종환우회장, 정병덕 쿠키뉴스 대표, 김광수 국회의원, 엄현석 국립암센터 혈액종양내과 교수, 고영일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최경호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사무관. 박효상 쿠키뉴스 기자

혈액암 치료환경 개선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환자의 치료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신약 급여화라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 19일 국회의원회관 6간담회실에서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광수(전북 전주시 갑, 민주평화당) 의원 주최로 ‘재발률 높은 혈액암 치료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환자들이 적극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치료 의약품의 급여 확대가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의료비 부담으로 환자가 생존연장의 기회를 포기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날 주제발표에 나선 고영일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혈액암은 새로운 약제의 치료 효과가 높은 편으로 신약을 통해 단순한 생존연장을 넘어 완치나 장기생존, 노동이 가능한 상태를 가능케 보장성 강화가 필요한 질환”이라며 “기타 고형암과 비교해 완치율이 굉장히 높아 치료를 받고 사회로 복귀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점은 단순히 수명을 연장하는 치료와는 다르다. 이러한 부분을 고려해 신약의 급여 확대 등 환자의 치료제 접근성을 강화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2012년 다발골수종을 진단받은 환자를 예로 들어 시대가 변함에 따라 혜택을 많이 본 케이스”라며 “차세대 유전자 검사, 임상시험, 신약 급여 확대 등으로 환자의 삶이 나아졌다. 비록 재발했지만, 계속 치료할 방안이 존재한다면 환자의 삶의 질은 올라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환자는 자가조혈모세포이식을 2차례 받고도 질환이 재발해 호스피스 상담을 권유받았다. 이후 2017년 3월 선별급여가 적용된 차세대 염기서열검사방법으로 검사한 결과, 이 환자에게 피부암에서 유명한 돌연변이인 BRAF V600E 돌연변이가 발견돼 약물치료를 시행했고 이후 완치해 직업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해졌다.

엄현석 국립암센터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다발골수종의 국내 치료현황’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우리나라와 미국의 다발골수종 환자 5년 생존율을 비교하면 10% 이상 차이가 난다”라며 “신약에 대한 접근성으로 인해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외국과 비교해 선택의 폭이 너무 좁다”고 강조했다. 또 국내 신약 보험 급여화가 해외보다 늦고, 각종 등재 절차 때문에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약도 접근성이 낮다고 주장했다.

특히 엄 교수는 유지요법에 쓰이는 ‘레날리도마이드’의 보험 급여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유지요법은 새로 다발골수종을 진단받은 환자의 초기 표준 치료방법으로 반응 유지 및 향상을 통해 질병의 진행을 막고 생존 기간을 연장하는 치료법이다. 유지요법으로 7년간 추적검사를 봤을 때 환자의 사망 위험이 25% 감소했고, 무진행 생존 기간도 2.4년 연장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엄 교수는 “유지요법은 반복적인 재발로 지친 다발골수종 환자들의 좋은 건강상태를 유지하고 생존기간을 연장하는 효과적인 치료법”이라며 “국내 허가된 유지요법은 안전성이 높아 환자들이 지속적으로 사용 가능한 유일한 옵션으로 해외 선진국처럼 우리나라 급여 적용해 환자들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캐나다에서 무상으로 레날리도마이드를 쓰고 있던 환자를 봤다. 한국에 오고 싶어도 개인사정, 가격 등 이유로 못 오고 있다고 한다”며 “가격 부담이 낮은 약제가 국내에 있지만 부작용 등으로 인해 지속적 사용이 어려웠다. 국내 허가된 레날리도마이드 유지요법은 안전성이 높아 환자들이 지속적으로 사용 가능한 유일한 옵션으로 해외 선진국처럼 우리나라도 급여를 적용해 환자들의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유지요법에 대해 고영일 교수는 임상에서의 효과도 뛰어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로 생존율의 향상이 명확하고 완치율도 일부 향상되는 모습을 보여 환자에게 옵션으로 제시할 수밖에 없다”라며 “급여 부담이 큰 약제는 보통 환자에게 제시하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이득이 명확한 부분이라 급여화를 통해 환자의 접근성을 높였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패널로 참석한 백민환 한국다발성골수종환우회장은 높은 금액으로 인해 치료가 어렵다고 호소했다. 그는 “다발골수종 유지요법으로 사용되고 있는 ‘레날리도마이드’의 한 달 약값이 250만원”이라며 “이미 1차 치료를 받은 후 재발한 환자가 사용하기 때문에 실직을 경험한 환자가 사용하기에는 가격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세계 6개 국가는 이 약제를 보험급여에 포함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재정적으로 어렵다고 한다”며 “다발골수종 환자에게 있어 문재인 케어 핵심 목표인 ‘예방중심’ 건강관리는 재발을 최대한 늦추는 것으로 이를 위해 유지요법이 꼭 필요하다. 또 다발골수종 환자에게도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 시급한 유지요법 급여화가 하루 빨리 시행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전미옥 쿠키뉴스 기자는 “취재를 하면서 생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국내 다발골수종 환자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매달 200~300만원의 의료를 부담하게 되면 많은 환자들이 ‘메디컬 푸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목표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 보장률 달성을 위해서는 우선순위를 고려해 꼭 필요한 항암요법에 대해 급여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효과만으로 약제 급여화가 추진되기 어렵고, 다발골수종 외의 다른 희귀질환치료제 공급 상황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최경호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사무관은 “약제가 고가여서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 효과 면에서 부인할 수 없고, 임상데이터도 충분하다”며 “다만, 전체적인 상황을 봐야 한다. 해외 상황, 실제 임상 적용 여부, 투여 대상, 약 투여 시기 등 많은 고려사항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형암과 혈액암은 특성도 다르고, 일반 항암제와 희귀질환치료제를 보는 시각도 다르다”며 “효과가 없는 약은 없다. 하지만 다른 암, 다른 질환에서도 우선순위가 등장하고, 어떤 부분에선 (우선순위 요건이) 부족할 수 있고 밀릴 수 있다. 한계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죄송하다고 생각하나, 복지부도 경청하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사무관은 “토론회를 통해 확인한 임상현장 의견, 환우 목소리 등을 바탕으로 우선순위를 고려해 국내 혈액암 치료환경을 개선하도록 필요한 사항은 논의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정책토론회를 주최한 김광수 의원은 “혈액암은 재발이 잦으며, 세부 질병이 많은 만큼 각 질환을 치료하는 방법 또한 다양해 선진국에서는 효능과 안전성이 입증된 치료 신약과 재발 방지를 위한 치료법을 빠르게 도입, 보험급여를 적용해 환자들의 치료 기회를 보장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인구 고령화로 혈액암 환자수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질환의 심각성이 큰데도, 여전히 고형암 대비 치료 환경이 제한돼 개선이 필요하다”며 이번 토론회 주최 배경을 설명했다.

노상우·유수인 쿠키뉴스 기자 nswrea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