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기술의 발달로 ‘암=걸리면 죽는병’이라는 인식도 깨진지 오래다. 혈액암만 해도 그렇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혈액암은 불치병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영화, 드라마 등에서 극적인 전개를 위한 소재로 사용되곤 했다.
혈액암은 혈액을 구성하는 혈액 세포나 골수, 림프 등에 생기는 암으로, 암세포가 피를 타고 몸 곳곳에 흐르기 때문에 위암, 대장암과 같이 특정 장기에 생기는 고형암과는 달리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적 치료가 힘들다. 때문에 과거에는 혈액암을 치료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웠다. 그러나 최근 혈액암 환자들을 위한 좋은 치료제와 치료법이 개발됐고, 이에 따른 생존율 또한 점차 향상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12년~2016년 혈액암 발생자의 5년 상대생존율은 다발골수종 41.9%, 백혈병 51.9%, 비호지킨 림프종 63.1%, 호지킨 림프종 83.0%로 나타났다. 이는 1993년~1995년 진단받은 환자에 비해 각각 15%p 이상 증가한 수치다.
과거 불치병으로 여겨졌던 혈액암도 생존율이 높아질 만큼 암 치료의 의학적인 어려움은 해소되어가고 있지만, 암 환자들의 경제적 부담까지 해소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암은 질병의 특성 상 장기적이고 강도 높은 치료가 필요하고, 이에 따라 발생하는 치료비, 입원비, 간병인 비용 등 경제적 지출은 환자들에게 부담이 되기 마련이다.
이에 정부는 암 환자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원책을 확대하고 있다.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를 목표로 2년 전부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이 시행되고 있으며, 환자들의 치료 환경 개선 및 치료제 접근성도 강화될 전망이다. 하지만 인구 고령화에 따라 암 환자도 증가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 또한 중요하다.
실제로 암등록통계에서 조사된 2016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암 환자는 22만9180명으로, 2015년 암 발생자수보다 1만2638명 증가했다. 2016년 기준 우리나라의 암 유병자수는 약 174만명에 이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암을 초기에 효과적으로 치료하고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치료 환경에 대한 지원이다. 암은 재발하거나 병이 진행될수록 치료비가 증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암의 재발과 악화를 막는 것은 환자의 삶의 질 개선뿐만 아니라 건강보험을 장기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는 건강보험을 기존의 ‘치료’ 중심에서 ‘예방’까지 포괄하려는 정부의 목표와도 맞닿아있다. ‘예방’이라 하면 질병이 걸리지 않게 사전에 대처하는 것만을 생각하지만 암에서의 ‘예방’이란 질환이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까지 의미하기 때문이다.
환자 중 다발골수종으로 자가 조혈모세포이식을 한 환자가 유지요법으로 재발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관리가 가능함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치료를 포기하는 것을 볼 때면 참으로 안타깝다. 암에 대한 정부의 보다 많은 관심과 지원책 마련으로 더 많은 암 환자들이, 질환의 초기 단계부터, 병원비 걱정 없이 최선의 치료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제중 화순전남대병원 혈액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