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해설가 고인규(32)씨는 한때 명문 프로게임단 SK텔레콤 T1에서 테란 적통을 이었던 프로게이머였다.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고, 잘했다. 스타크래프트1 습득도 남들보다 배 이상 빨랐다. 온라인상에서 최연성 등 당대 초고수들을 상대로 접전을 벌였던 그가 프로게이머가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데뷔 후에도 승승장구했다. 전성기는 2006년, 팀의 프로리그 우승을 이끌고 결승전 최우수선수(MVP)를 받았던 때였다. 파란만장했던 현역생활은 2013년 병역 의무 종료와 함께 끝냈다. 새로운 일자리를 물색하던 와중 SPOTV GAMES 손경원 PD가 손을 내밀었다. “새로운 스타크래프트2 리그를 개최하려고 하는데 게임을 보는 눈이 남다른 사람을 구한다”고 했다. 그렇게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공부에 흥미를 느껴본 적이 없었지만, 대상이 게임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고씨는 게임을 집요하게 공부해 전문성을 길렀다. 그는 “손 PD가 저의 어떤 점을 보고서 그런 자리를 맡긴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감사했다. 이거 아니면 안 되겠다, 반드시 이곳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게임을 공부했다”며 “곧 현역 프로게이머 시절보다 더 높은 랭킹을 찍었다. 말 그대로 스타크래프트2에 올인 했다”고 전했다.
고씨의 심도 높은 게임 분석은 스타크래프트2 팬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능변가는 아니었으나 게임 얘기라면 며칠이고 밤을 새울 수도 있었다. 그는 채민준 캐스터, 유대현 해설위원과 함께 ‘유채꽃 트리오’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스타크래프트2는 저를 해설자로 만들어준 게임”이라고 회상했다.
고씨는 2016년 또 하나의 도전에 나섰다. e스포츠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에 뛰어들었다. 다시 새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장 낮은 게임 점수를 받았습니다. 1년 동안 게임을 3000판 넘게 했어요. 웬만한 프로게이머들만큼 한 거죠. 해설자 마지노선이라고 할 수 있는 점수까지 실력을 끌어올렸습니다.” 그는 지난 2년간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해설자로 활동했다.
그는 요즘 중소규모 대회의 해설자로 거듭났다. 지난주 폐막한 ‘대통령배 아마추어 e스포츠 대회(KeG)’를 비롯해 여성부 리그, 인플루언서들이 출전하는 스트리머 대회 등이 고씨의 주된 활동영역이다. 카드게임 ‘섀도우버스’ 등 국내에서 비인기 종목으로 분류되는 게임도 그가 중계를 담당한다.
“처음에는 1부 리그, 큰 규모의 게임을 해설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다양한 게임이 있고, 다양한 리그가 있더군요. 거기서도 누군가는 마이크를 잡아야 해요. 요즘에는 즐겁게 중계하고 있습니다. e스포츠 팬 여러분들이 아마추어 등 중소규모 대회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글·사진=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