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수하러 찾아온 흉악범 돌려보낸 얼빠진 경찰

입력 2019-08-21 04:03
경찰이 자수하러 경찰관서를 찾아온 ‘한강 몸통 시신 사건’의 피의자를 다른 경찰서로 가라며 돌려보낸 사실이 드러났다. 흉악범이 제 발로 찾아왔는데도 안일하게 대응해 놓칠 뻔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는 지난 17일 오전 1시쯤 서울지방경찰청 안내실로 찾아와 자수 의사를 밝혔다. 당시 안내실에는 경사 1명과 의경 2명이 당직근무 중이었는데 피의자가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고 “강력계 형사에게 이야기하겠다”고만 거듭 얘기하자 인근 종로경찰서로 가라며 돌려보냈다고 한다. 경찰청 훈령인 범죄수사규칙에는 자수는 사건 관할 지역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접수하고, 부득이하게 사건을 다른 경찰서에 인계할 때는 피의자 인도서를 작성하고 관련 기록을 남기라고 규정돼 있다. 당시 경찰은 이런 규칙을 철저히 무시했다. 안내실 근무자였지만 최소한 순찰차에 태워 종로경찰서로 이송하든지, 그쪽 경찰을 불러 인계하든지 하는 정도의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피의자가 택시를 잡아 타고 곧장 종로경찰서로 찾아가 자수를 했기에 망정이지 마음을 고쳐먹고 달아났다면 어찌 됐겠나. 엽기적인 사건의 해결이 장기화되고 범인 검거에 경찰력이 대대적으로 동원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논란이 일자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야간 당직 중 접수되는 고소·고발 건의 경우 인계하는 절차가 있는데, 자수 건에 대해선 구체적인 매뉴얼이 없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자수 대응 매뉴얼이 없어 돌려보냈다는 취지인데, 안이한 인식에 말문이 막힌다. 이런 경찰에게 어떻게 범죄 수사와 치안을 믿고 맡길 수 있겠나.

경찰의 무사안일, 기강해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사행성 게임장 업주로부터 성접대를 받은 경찰 간부가 있었는가 하면, 야간 근무 중 근무지를 무단 이탈해 모텔에서 성매매 여성과 함께 있다가 적발된 경찰관도 있었다. 윤창호법 시행 후에도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는 경찰관은 꼬리를 물고 있다. 그런데도 경찰은 솜방망이 징계로 넘어가기 일쑤다. 이런 수준으로 수사권 독립을 주장하면 누가 지지하겠나.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경찰이 목소리를 내려면 내부 비리를 엄단하고 경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는 모습부터 보여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