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렁한 극장가… 여름 특수 실종

입력 2019-08-20 04:09
사자

극장가 여름 특수는 이제 옛말이 됐다. 올여름은 유독 조용했다. 통상 7~8월에는 연 관객 4분의 1이 몰리는데, 올해는 눈에 띄는 흥행작이 없었다. ‘성수기=대박’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휴가철이나 명절 같은 성수기 시즌에는 평소보다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는다. 때문에 전체 관객의 볼륨 자체가 커지고, 덩달아 흥행 확률도 높아진다. 제작비 100억∼200억원 규모의 대형 영화들이 앞다퉈 이 시기에 개봉하는 이유다.

‘1000만’ 흥행을 노려볼 수 있다는 점도 구미를 당기는 요소일 테다. 실제로 극장가 최대 성수기인 여름에는 1000만 영화들이 적잖이 배출됐다. 최근 3년만 살펴봐도 2016년 ‘부산행’, 2017년 ‘택시운전사’, 2018년 ‘신과함께-인과 연’이 그랬다.

나랏말싸미

그러나 올여름 개봉한 ‘나랏말싸미’는 전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사극이었고, 배우 안성기와 박서준이 호흡을 맞춘 ‘사자’는 마니아층이 뚜렷한 오컬트물이었음에도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엑시트

큰 성공을 거둔 건 ‘엑시트’뿐이다. 도심에서 발생한 가스 테러라는 설정에 긴박감 넘치는 액션을 가미한 영화는 손익분기점(350만명)을 가뿐히 넘기며 흥행가도를 탔다. 개봉 4주차에 누적 관객 756만명을 기록 중이다.

개봉 초기에 위태로웠던 ‘봉오동 전투’는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분노의 질주: 홉스&쇼’의 압도적인 기세에도 박스오피스 2위를 달리며 선전하고 있다. 개봉 12일 만에 누적 관객 400만명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450만명) 도달을 눈앞에 두고 있다.

봉오동 전투

기대작들의 부진으로 한국영화 관객 수는 평년에 비해 대폭 감소했다. 7월 한국영화 관객 수가 2008년 이후 최저치인 334만명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38% 감소한 수치이다. 마블의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이 지난달 2일 개봉하면서 한국영화들이 이 시기 개봉을 피한 탓도 있다.

한국영화들이 7월 하순에 몰리면서 7월 극장가는 외국영화들이 점령했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 이어 ‘라이온 킹’ ‘알라딘’ ‘토이 스토리4’가 흥행 바통을 이어 7월 외국영화 관객 수는 역대 최고치인 1858만명을 기록했다. 덕분에 7월 전체 관객 수(2192만명)는 평년 수준을 유지했다.

대형 외화들의 공세는 국산 기대작들의 부진을 이끈 요인이 됐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올여름 빅4 영화들이 관객의 만족도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 첫 번째 이유이지만, 여름 시장이 시작되기 전 디즈니 작품들이 가족 단위 관객을 선점해버린 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개봉 시기가 흥행에 미치는 영향은 한정적이다. 4월 ‘어벤져스: 엔드게임’, 5월 ‘알라딘’ ‘기생충’이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것처럼, 비수기 개봉 영화가 오히려 대박이 나는 경우도 잦다. 정 평론가는 “이제는 성수기와 비성수기의 구분이 모호해졌다. 작품 자체가 얼마만큼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