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지난 연말 출시한 대형 SUV ‘팰리세이드’는 출시된 지 반 년이 지났지만 흥행 열풍은 식지 않고 있다. 여전히 한 달에 3000대 넘게 팔리고 있고, 올해 판매대수는 이미 3만5000대를 뛰어넘었다. 지금도 10개월은 기다려야 제품을 받을 수 있다.
팰리세이드의 인기 비결 중 하나는 디자인이다. 전통적인 SUV의 특성을 지키면서도 반전 있는 디자인으로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주역인 하학수(47) 현대내장디자인실장(상무)과 장재봉(53) 현대외장디자인실장을 지난 14일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만났다.
이들은 새롭게 출시하는 플래그십(주력) 모델인 팰리세이드의 존재감을 어떻게 하면 극대화할 수 있을지 가장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가족’에 적합한 속성을 유지하면서 운전자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당당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죠.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 팰리세이드만의 감성적 우위를 가진 독창적인 디자인을 개발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외장의 당당함’과 ‘내장의 감성’을 접목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 실장은 요트에서 내장 디자인의 모티브를 찾았다. 개인적으로 요트를 경험했을 때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실제 디자인에 반영된 것이다.
하 실장은 “개방된 느낌, 햇살이 비치고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듯한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과 여가활동에 적합한 차라는 이미지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운전자석에서 조수석으로 이어지는 차 앞부분에는 요트의 데크에 사용하는 티크 우드로 포인트를 주고, 센터페시아는 하이테크하면서도 요트의 조타실 같은 느낌을 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외장은 대담하고 웅장하지만 내장은 가족을 위한 배려가 돋보이는 반전도 의도했다. 하 실장은 “공간 실용성을 최대한 살리려 했고 지금 고객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사용자 경험(UX)에 대해 고민했다”면서 “버튼식 기어를 적용해 확보한 센터페시아 공간은 수납을 편리하게 해주고 3열의 USB 단자 등은 좋은 피드백을 받고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디자인 개발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장 실장은 ‘라이팅 시그니처’와 관련된 일화를 얘기했다. 장 실장은 “팰리세이드는 세계 최초로 리어램프 주변부(가니시)에 ‘히든 라이팅’을 적용했다. 주간엔 눈에 띄지 않지만 야간에는 가니시에 뚫린 수백개의 작은 구멍에서 빛이 새어나오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레이저로 구멍을 뚫는 작업은 엔지니어들이 하지만 구멍의 위치와 각도 등은 디자이너들이 하나하나 설정해야 했다. 장 실장은 “품평회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 작업이 끝나지 않아 조마조마했다. 의도한 대로 ‘빛이 새어나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됐다”면서 “결과적으론 아주 보람있었다”고 회상했다.
내장의 경우 디자이너들도 대형 SUV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 초반에 애를 먹었다. 하 실장은 “대형 모델이 많은 북미 등으로 디자인 담당자들이 찾아가 직접 겪어보고 3열 공간 활용성 등을 연구했다”고 말했다.
현대디자인센터는 최근 디자인 혁신을 실현해나가고 있다. 이전의 ‘안전한’ 방식을 유지하면 새로운 제품도, 새로운 고객도 창출할 수 없다는 위기감은 동력의 한 축이다. 그 속에서 팰리세이드도 태어났다. 장 실장은 “‘대형 SUV는 늘 그랬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막상 차를 탔을 때 지금껏 고객이 생각지 못했던 기대치를 끌어내려 했다”고 말했다.
화성=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