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 칼럼] 야권 통합, 왜 할 수밖에 없는가

입력 2019-08-20 04:05

중도층과 20∼50대에 두터운 한국당 비토세력 형성돼
야권, 확장성 없으면 내년 총선 승부처 수도권 등에서 필패
야당 리더들이 노선 차이, 이익 갈등, 감정의 골 등 3대 장애물 걷어차는 결단력 보여야


문명사가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최근 “멍청한 지도자의 멍청한 정책은 독재보다는 민주주의에서 바꾸는 게 더 쉽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빗댄 것이지만, 민주주의에서는 선거를 통해 집권세력을 심판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미 총선 정국에 들어서는 가을 정국에서 가장 큰 이슈는 야권재편과 통합이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구도 정책 인물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 구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권 심판을 원하는 야권의 입장에서 분열적 구도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정치에서는 전략이 명분에 우선한다는 명제가 참이다. 학문에서는 진리가 가장 중요하고 사회운동에서는 정의가 가장 중요하지만 정치에서는 전략이 가장 중요하다.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기는 정치도 마찬가지지만,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진리와 정의도 포말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옳으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은 학문과 사회운동에서는 통하지만, 정치에서는 아무리 명분이 훌륭하더라도 선거에서 지면 그 명분조차 곧 잊힐 운명에 처한다. 그래서 정치는 철저히 의도가 아니라 결과로 말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정치의식 지형은 최근 상당한 변화를 보인다. 2016년 여론조사들을 보면 한국의 보수층은 35% 안팎이었고, 진보층은 25% 안팎, 그리고 중도층이 30% 정도(무응답 10% 정도)였다. 최근 조사들은 이 구도가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8월 14일 한국리서치 조사를 보면 진보가 30.3%인데 비해 보수층이 25.8%로 역전되었고, 중도층이 36.6%로 과거보다 늘었다. 문제는 중도층의 성향인데, 이 중도층에서 민주당과 한국당 지지는 35.5%대 16.6%로 두 배 이상 벌어진다. 바른미래당 지지도 6.7%에 불과하다. 대부분 이슈에서 중도층의 여권 경사도가 가파르다. 더 주목할 점은 세대별 의식에서 60대 이상을 제외하고 50대까지도 보수층이 소수화되었다는 점이다. 386세대가 이제 50대를 대부분 차지하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산업화세대가 이미 고령화되었고, 민주화세대가 중심 세대로 부상하고, 그에 이어 자유화세대가 뒤를 잇고 있다. 민주화세대 또는 자유화세대들에게 ‘탄핵의 그늘’은 여전히 두텁다. 정권의 실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점증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다수는 아직 자유한국당 등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1990년대에는 ‘DJ 불가론’이 있었다. DJ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응집력에도 불구하고 DJ에 대한 거부감의 장벽이 높아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프레임이었다. 그 프레임을 DJ는 JP와의 연합을 통해 돌파했다. 지금은 자유한국당이 거꾸로 그 불가론 프레임에 갇힌 형국이다. 중도층과 20대와 50대에 걸친 광범한 비토 세력이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이 현실을 잘 못 보게 만드는 또 다른 현실이 있다. 그것은 보수층의 집단사고다. 자신이 접하는 사람들, 자신이 듣고 보는 정보들은 온통 정권에 대한 높은 분노 게이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이들이 다수인 것처럼 감각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가장 피해야 할 함정이 자신의 청중과 지지자들의 함성을 전체의 여론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자신의 힘에 대한 주관적 과대평가가 전략에서는 가장 큰 독이 된다.

요컨대 지금 야권의 가장 큰 전략적 화두는 확장성의 문제다. 확장성이 없는 한 내년 총선은 어렵다는 것이다. 총선의 승부처는 전체 의석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수도권이다. 이 수도권에서 현 상태로 야권이 승리를 기대하는 것은 막대기로 뛰는 노루를 잡겠다는 것과 비슷하다. 선거에서 기본 전략은 두 가지다. 갈라치기와 아우르기. 자신에게 정치지형이 유리하면, 갈라칠수록 상대가 쪼그라들고 자신의 지지층은 결집한다. 적폐청산과 반일 프레임 등에서 여권이 쓰는 방법이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금 쓰는 전략이다. 반면에 정치 지형이 불리할 때는 아우르기를 해야 한다. YS의 3당 합당, DJ의 DJP 연합이 대표적인 아우르기였고 과거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딕 모리스라는 뛰어난 전략가의 도움을 얻어 썼던 방책이다.

물론 통합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만만치 않다. 특히 노선의 차이, 이익 갈등, 감정의 골이 통합을 가로막는 3대 장애물이다. 노선의 차이는 근본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확대된다. 이익 갈등은 잠재적 대선주자들과 총선 출마자들의 정치적 계산에 의해 증폭된다. 감정의 골은 그동안 쌓인 감정들로 인해 ‘저 사람들과는 못 한다’는 심리에 의해 깊어진다. 이 세 장애물을 기술적으로 푸는 것은 쉽지 않다. 이른바 야권 리더들이 큰 전략적 목표를 위해 장애물을 걷어차는 결단의 리더십 없이는 불가능하다. 차기 대권을 겨냥하는 보수와 중도의 정치인들에게는 두 가지 길만 있을 뿐이다. 모두 다 지는 길이냐, 모두 다 기회를 갖는 길이냐? 지금이야말로 야권 리더들이 그 정치력을 보여줄 때다.

박형준(동아대 교수·전 국회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