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 사태가 중국과 미국의 ‘적극적 개입’으로 격화하면 한국 경제도 적잖은 충격을 받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이 ‘블랙스완(검은 백조)’으로 급부상했다는 진단까지 제기된다. 홍콩 관련 금융상품의 손실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국 자산운용사 노이버거 베르만의 펀드매니저 스티브 아이즈먼은 지난 8일(현지시간) CNBC방송 인터뷰에서 “지금 ‘블랙스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홍콩”이라고 지적했다. 블랙스완은 검은 백조처럼 현실성은 없지만 일단 벌어지면 파급이 큰 사건을 말한다. 아이즈먼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촉발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붕괴 사태를 예견해 주목받은 인물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홍콩 시위가 더 이상 홍콩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정학적 리스크가 되고 있다”며 “사태 악화 시에는 중국 경제는 물론 아시아 경제 전체에 커다란 하강 압력으로 작용하는 동시에 아시아 통화의 환율 불안이 확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상황은 이미 무역갈등을 빚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홍콩 사태를 계기로 전선을 확대하는 것이다. 중국 중앙군사위원회의 지휘를 받는 중국 측 무장경찰은 홍콩과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집결해 진압훈련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맞대응 카드로는 홍콩에 부여한 특별 지위를 철회하는 게 거론된다. 미국은 1992년 홍콩법을 제정해 투자를 비롯해 국내법을 적용할 때 홍콩을 중국 본토와 달리 특별 대우하고 있다. 미국 의회는 홍콩의 자치 수준이 떨어졌다고 판단되면 특별 지위를 거둬들일 수 있게 하는 법안을 검토 중이다.
홍콩이 특별 지위를 잃게 되면 동아시아 금융·물류 허브로 구실하기 어려워진다. 당장 한국의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한국에 홍콩은 중국 미국 베트남에 이어 4번째로 큰 수출 대상국이다. 18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홍콩 무역액은 480억 달러(58조1280억원)다. 이 가운데 460억 달러가 수출액이다. 반도체가 주요 수출품으로 지난해 홍콩에 수출한 금액의 60%를 차지했다.
금융시장에서는 홍콩 주가지수를 연계한 금융상품의 손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홍콩H(HSCEI·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 발행액은 32조1869억원(중복 포함)에 이른다. 올해 상반기 전체 ELS 발행액(47조6585억원)의 67.5% 수준이다. ELS는 만기까지 기초자산이 미리 약정한 범위 아래로 떨어질 경우 원금을 잃을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6일 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홍콩 주가지수와 연계된 ELS의 손실 가능성은 아직 희박한 상황으로 판단된다”며 “지난 13일 기준 홍콩H지수는 전년 말과 비교해 2.7% 하락한 수준으로 투자자의 원금 손실 구간(발행시점 지수 대비 35~50% 하락)에 도달하기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다는 게 시장의 평가”라고 말했다.
강창욱 양민철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