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모(45)씨는 이따금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리고 숨이 차면서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 그러다 10~15분 정도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증상이 사라졌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얼마 전 다시 같은 증상이 1시간 넘도록 계속돼 황급히 응급실을 찾았고 심장이 아주 빠르게 뛰는 ‘심방세동’ 진단을 받았다. 이모(39)씨는 수 차례 가슴 두근거림과 함께 실신도 경험했다. 의사는 심장이 펌프질을 못하고 가늘게 떨리는 상태인 ‘심실빈맥’이라고 했다. 둘 다 ‘부정맥’ 질환이다. 두 사람은 언제고 급사(急死)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심각성을 깨달았다.
최씨와 이씨를 괴롭힌 ‘부정맥’은 최근 5년간 20.4%나 증가했다. 19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부정맥 진료 환자는 2014년 127만2698명에서 지난해 153만2051명으로 크게 늘었다.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 부정맥클리닉 황유미 교수는 “고령 인구의 증가 탓이 가장 크고, 미디어 등을 통해 예전엔 잘 몰랐던 병에 대한 지식을 많이 접하게 되면서 병원을 찾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피로나 스트레스, 알코올·카페인 섭취 등 심장에 부담을 주는 환경적 요인의 증가도 한몫한다.
심장은 대체로 분당 60~100회 정도 뛰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심장 박동(펌프질)이 갑자기 100회 이상 빨라지거나(빈맥) 60회 미만으로 늦게 뛰거나(서맥), 엇박자로 뛰는 등 불규칙해지는 증상이 바로 부정맥이다. 황 교수는 “나이들면 얼굴에 주름이 생기듯 심장 펌프질을 돕는 심장근육에서 전기신호를 만드는 ‘전도계’도 노화된다”면서 “이로 인해 불규칙한 신호가 발생해 부정맥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0~30대 젊은층 환자는 이런 심장 전도계에 신천적 이상이 있는 경우다. 대부분은 노화로 인해 60대 이후 발병이 느는 추세다.
심장은 위쪽의 심방과 아래쪽 심실로 나뉘고 각각 좌·우심방, 좌·우심실로 구성돼 있다. 심방과 심실이 한 번씩 박자에 맞춰 수축해서 피를 펌프질해줘야 온 몸으로 뿜어져 나가는데, 이런 심방과 심실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부정맥이 발생한다. 발생 부위와 메커니즘, 맥박 수에 따라 심방세동, 심실세동, 심실·심방 조기박동, 심실빈맥 등 여러 유형이 있다.
부정맥의 일반 증상은 두근거림이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 어지러움, 호흡곤란 등이다. 심하면 기절하거나 급사에 이르기도 한다. 가장 위험한 증상이 실신이다.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온 몸에 힘이 빠지고 정신을 잃고 기절까지 한다면 절대 방치해선 안되며 지체말고 병원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많은 경우 이런 부정맥 증상이 굉장히 짧은시간 동안 나타났다가 사라져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흔히 부정맥을 ‘도깨비 같다’ ‘천의 얼굴을 가졌다’고 말하는 이유다. 사람에 따라서는 1년에 단 몇 분만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어 기본 심장검사인 ‘심전도’에서 측정되지 않을 때도 많다. 심전도를 찍는 동안 부정맥 증상이 없으면 진단이 어렵다는 것. 이럴 땐 24시간 심장박동을 측정하는 ‘홀터 검사’, 심장의 구조적 이상을 살피는 ‘심장초음파’, 인위적으로 운동을 시켜 심장기능 변화를 보는 ‘운동부하심전도검사’ 등을 추가로 받아야 부정맥을 확진할 수 있다.
같은 병원 부정맥클리닉 김지훈 교수는 “부정맥은 특히 돌연사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면서 “급사의 원인은 심장혈관이 막히는 심근경색인 것으로 많이 알고 있는데 좀더 정확히 말하면 심근경색에 의한 2차적인 심실빈맥과 심실세동이 원인”이라고 했다. 심장의 피를 뿜어내는 역할을 하는 좌·우 심실의 각 부분이 불규칙적으로 수축해 돌연사를 유발한다는 얘기다. 가장 흔한 부정맥 중 하나인 심방세동의 경우, 돌연사 뿐 아니라 뇌졸중(뇌경색) 위험 또한 5배 이상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돌연사를 초래하는 건 여러 부정맥 중 일부다. 부정맥은 종류에 따라 적절한 약물과 시술 치료를 통해 60~99% 완치되는 만큼, 과도한 걱정을 하기 보다는 조기 발견과 적극적인 치료, 꾸준한 관리 노력이 더 필요하다. 심장 박동이 느린 서맥이나 치명적인 심실세동의 경우 심장 박동을 도와주는 기계를 몸에 삽입할 수도 있다.
약물에 반응하지 않거나 약물 치료 중에도 부정맥이 생기는 유형이라면 ‘전극도자절제술’을 고려해야 한다. 이는 전극이 달린 특수 도자(카테터)를 혈관을 통해 넣어서 불규칙한 전기 신호를 만드는 심장 부위에 위치시킨 후 전극에서 나오는 높은 열로 지지는 시술이다.
특히 최근엔 3차원 지도화(3D Mapping)시스템을 활용한 첨단 전극도자절제술이 도입돼 주목받고 있다. 황 교수는 “3D 영상으로 구현된 환자 개개인의 심장 구조와 심장 내부를 돌아다니는 카테터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해 가며 시행할 수 있어 안전하고 정확한 시술이 가능하며 시술 시간 단축과 방사선 피폭량 감소에도 효과적”이라고 했다.
기존 방식은 카테터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없어 시술 중 수시로 X선촬영을 통해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이로 인해 시술 시간이 길어지고 장시간 방사선에 노출될 우려도 컸다. 김 교수는 “3D영상 장비를 이용한 방식은 부정맥 중에 심방세동, 심실빈맥, 발작성 상(上)심실빈맥 등 유형 치료에 주로 적용된다”면서 “약물 치료에 비해 성공률이 매우 높고 완치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상심실빈맥의 경우 90~95% 성공률을 보이며 성공률이 가장 낮은 심방세동의 경우에도 60~80%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다만 몸 속에 카테터를 삽입해 고열로 심장에 손상을 입히는 난이도 높은 시술인 만큼 풍부한 경험을 가진 의료진과 의료기관에서 시술받은 것이 중요하다. 부정맥 예방을 위해선 금주와 금연을 생활화하고 카페인을 함유한 에너지 음료 섭취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