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일본이 성공 개최에 사활을 걸고 있는 내년 도쿄올림픽을 거론하면서 “우호와 협력의 희망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야기된 최악의 한·일 갈등 속에서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어서 향후 외교적 해법에 힘이 실릴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15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우리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일본과 안보·경제 협력을 지속해 왔다”며 “일본이 이웃나라에 불행을 주었던 과거를 성찰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이끌어가길 우리는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과거 일본이 벌인 전쟁을 하나하나 언급했지만, 일본 정부를 직접 비판하지는 않았다. 광복에 대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태평양전쟁까지 60여년간의 전쟁이 끝난 날이며, 동아시아 광복의 날이었다”며 “일본 국민들 역시 군국주의 억압에서 해방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거를 성찰하는 것은 과거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한·일 갈등의 도화선이 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이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민감한 과거사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도쿄올림픽이 공동 번영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평창 동계올림픽에 이어 내년에는 도쿄 하계올림픽, 2022년에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열린다. 올림픽 사상 최초로 맞는 동아시아 릴레이 올림픽”이라며 “동아시아가 우호와 협력의 기틀을 다지고 공동 번영의 길로 나아갈 절호의 기회”라고 평가했다. 이어 “세계인들이 평창에서 평화의 한반도를 보았듯 도쿄올림픽에서 우호와 협력의 희망을 갖게 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한·일 갈등이 잘 해결될 경우 도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치러지는 데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다만 문 대통령은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와 관련해 “일본 경제도 자유무역 질서 속에서 분업을 이루며 발전해 왔다”며 “국제 분업체계 속에서 자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을 무기화한다면 자유무역 질서가 깨질 수밖에 없다. 먼저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대해 일본 정부는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부드러워진 것 같다”고 평가했다. 외무성의 한 간부도 “반일적인 내용은 그다지 없었다”고 말했다고 지지통신이 전했다. 일본 주요 언론들도 문 대통령이 역사문제 언급을 삼가고 대일 비난의 톤을 억제했다고 보도했다.
임성수 장지영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