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사진)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의 조기 개최를 촉구하며 “불만스러운 점이 있더라도 대화의 판을 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도발을 염두에 둔 것으로, 북한이 협상을 하면서 불만을 해소해야지 협상장에서 뛰쳐나가선 안 된다고 주문한 것이다. 이는 그만큼 현재의 비핵화 협상이나 남북 간 대화가 교착 상태에 빠져 있음을 시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남·북·미는 지난 1년8개월간 대화 국면을 지속했고 최근 북한의 몇 차례 우려스러운 행동에도 불구하고 대화 분위기가 흔들리지 않고 있다”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커다란 성과로 북한의 도발 한 번에 한반도가 요동치던 이전 상황과 분명히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이어 “지난 6월 말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 이후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북·미 간의 실무협상이 모색되고 있다”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축을 위한 전체 과정에서 가장 중대한 고비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 고비를 넘어서면 한반도 비핵화가 성큼 다가올 것이고, 남북 관계도 큰 진전을 이룰 것”이라며 “경제협력이 속도를 내고 평화경제가 시작되면 언젠가 통일이 우리 앞의 현실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평화경제와 관련해 “북한을 일방적으로 돕자는 것이 아니다”며 “서로의 체제 안전을 보장하면서 남북 상호 간 이익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며 함께 잘 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남과 북이 통일되면 2050년 국민소득 7만 달러 시대가 가능하다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통계를 인용하며 “남북 모두 경제적 이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북한보다 강력한 방위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궁극적인 목표는 ‘대결이 아닌 대화’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미국과 일본도 계속 북한과 대화를 추진하고 있는 점을 언급하면서 대북 강경 대응을 요구하는 야당과 보수 진영을 겨냥해 “이념에 사로잡힌 외톨이로 남지 않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2045년 원코리아’라는 남북 통일 비전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늦어도 2045년 광복 100주년까지 평화와 통일로 하나가 된 원코리아(ONE KOREA)로 가는 기반을 단단히 다지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다만 남북 경협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하지 않았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향후 30년간 남북 경협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최소 170조원에 달한다”며 경협 확대 의지를 드러냈었다. 경협 성공 사례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도 언급했다. 당시는 남북 평양 정상회담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등 대형 이벤트를 앞둔 상황이었다. 문 대통령이 1년 전과 다르게 구체적인 경협 사업을 연설에 담지 않은 것은 멈춰버린 비핵화 협상과 단절된 남북 대화의 현실이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자유한국당은 문 대통령 경축사에 대해 “말의 성찬으로 끝난 허무한 경축사였다”고 비판했다. 전희경 대변인은 “경축사를 통해 드러난 문재인 정권의 현실 인식은 막연하고 대책 없는 낙관, 민망한 자화자찬, 북한을 향한 여전한 짝사랑이었다”고 지적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