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만세 외치던 자리, 광복 기쁨의 노래

입력 2019-08-16 00:04 수정 2019-08-16 17:25
8·15 광복 74주년 기념으로 15일 천안 매봉교회에서 열린 ‘농어촌 문화 나눔 음악회’에 참석한 지역 주민 및 교회 성도들이 유관순 열사 생가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운동을 재현하고 있다. 천안=강민석 선임기자

1919년 3월 31일 밤, 당시 17세였던 유관순 열사는 천안 매봉산 정상에 올라 기도드린 뒤 지역 내 독립 만세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봉화를 올렸다.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15일, 산 아래 그가 다니던 교회에선 독립 만세 함성이 퍼져나갔다. 이번엔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과 광복의 기쁨이 함께했다.

8·15 광복 74주년 기념 ‘농어촌 문화 나눔 음악회’가 이날 오전 11시 천안 매봉교회(박윤억 목사)에서 ㈔한국농선회(회장 소구영 목사) 주최로 열렸다. 올해로 15회째를 맞이하는 이번 음악회에는 전국농어촌목사합창단 지휘자인 베이스 최철 교수, 소프라노 조영주 교수, 피아노 박지현 교수와 방송프로그램 ‘팬텀싱어’에 출연한 테너 안세권이 출연했다. 지역 교회 어린이들을 위한 히즈미션 복음 뮤지컬팀의 공연도 함께 진행됐다. 음악회에 참석한 100여명의 주민들은 ‘오늘같이 멋진 날에’ ‘오 나의 태양’ ‘내가 바라는 세상’ 등 광복의 기쁨을 노래하는 듯한 이들의 공연에 박수와 함께 브라비(Bravi)를 외치며 환호를 보냈다.

매봉교회는 유 열사를 배출하고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교회다. 100년 전인 1919년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선 유 열사가 올린 봉화를 시작으로 독립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유 열사의 작은 아버지였던 유중무 당시 매봉교회 전도사와 조인원 속장 등 교회 성도들은 아우내 장터로 가 만세 운동을 일으켰다. 교회는 이후 일제의 극심한 핍박을 받았다. 일제는 만세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교회를 불태웠다. 세번째였다. 1905년 일제는 을사늑약에 반대하는 의병 운동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매봉교회에 방화했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을 땐, 82명의 성도가 의연금을 보낸 것을 빌미로 또 교회를 불태웠다. 매봉교회 성도들은 세 차례 방화에도 굴하지 않고 매번 교회를 재건했다.

100년 만에 매봉교회 예배당에 1919년 그날의 함성이 다시 이어졌다. 음악회를 통해 예배당에 모인 이들은 다 함께 일어나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 삼창을 했다. 독립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광복의 기쁨을 나누는 음악회였다.

박윤억 목사는 “3·1운동 100주년과 광복 74주년을 맞이해 음악회를 열게 돼 감회가 새롭다”며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일관계가 악화됐다. 유관순 열사의 정신을 본받아 일본의 영적 변화를 위해 함께 기도하자”고 말했다.

천안=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