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대행 업체와 공유주방 등 최근 주목받는 사업 모델에는 공통점이 있다. 업체는 플랫폼을 제공하고 ‘골목 식당 사장님’들이 이 플랫폼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업체는 톡톡 튀는 상인들의 사업 아이디어로 메뉴가 풍부한 플랫폼을 만들 수 있다. 상인들은 적은 비용으로도 목 좋은 자리, 깔끔한 인테리어, 노하우까지 전수받을 수 있다.
하지만 플랫폼이 성공하려면 우선 입점 업체들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한 업체가 주먹구구식 운영으로 돌발변수를 만들면 플랫폼과 동료 상인들에게도 피해가 간다. 반면 교육을 통해 성공적으로 노하우를 전수하기만 하면 상승효과를 극대화할 수도 있다. 상인이 성공해야 기업이 성공하는 책임공유 사업 모델인 셈이다.
배달의민족을 서비스하는 우아한형제들은 2014년 ‘배민아카데미’를 만들어 배달의민족을 이용하는 업체 사장들을 교육해 왔다. 일부 사장들은 배민아카데미 도움을 받아 사업을 성공시킨 뒤 다시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배민아카데미를 찾을 정도다.
서울 중랑구에서 보쌈집을 운영하는 장임택씨는 배민아카데미에서 사업의 실마리를 찾았다. 장씨는 8년 전 금융회사를 퇴직해 가게를 열었을 때만 해도 장사가 잘됐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매출은 곧 뚝 떨어졌다. 영문을 모르던 장씨는 결국 창업 5년 차에 이웃 점포 사장을 따라 배민아카데미를 처음 찾았다. 그는 거기에서 문제가 무엇인지 알았다. 장사가 안돼 메뉴를 40여 가지로 늘렸는데 오히려 맛이 떨어지고 조리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 것이다. 장씨는 아카데미에서 얻은 조언에 따라 메뉴를 확 줄였다. 보쌈과 국수, 족발을 집중적으로 판매하고 1인 보쌈 메뉴를 만들어 배달도 늘렸다. 홀 손님이 배달을 시키고 배달 손님이 홀을 찾는 선순환이 시작됐다.
혼자서는 꿈도 꾸기 어렵던 일이다. 장씨는 아카데미 동료들과 강사들에게서 많은 조언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요식업을 하다 보면 모르는 것, 물어보는 것이 많지만 바로 옆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경쟁자라 안 알려준다”며 “직장생활만 하다 은퇴 후 먹고살기 위해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노하우를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광진구 화양동에서 감자탕집을 운영하는 박진현씨는 배민아카데미에서 장사의 기본을 배웠다. 가게를 연 지 3개월 만에 처음 배민아카데미를 찾은 박씨는 5년째 수업을 받고 있다. 박씨는 아카데미에서 손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을 배웠다. 식탁보와 숟가락을 고르는 것 하나까지 손님의 편의를 생각하게 됐다. 무엇보다 장사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을 얻었다. 박씨는 “현장에 있는 사장님들에게 성공이라는 것은 굉장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이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으려면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카데미 수강생들은 배달의민족 사업 모델의 핵심이다. 배달의민족이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것은 R&D 투자나 마찬가지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배민아카데미를 찾는 사장님들이 안정돼야 배달의민족도 안정화되고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 막 첫삽을 뜬 공유주방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산도 골목 식당 사장들이다. 공유주방은 하나의 주방을 여러 업체가 나눠 쓰며 비용을 절감하는 사업 모델이다. 업체 간 노하우를 나누고 부족한 부분을 메꿔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심플프로젝트컴퍼니가 운영하는 공유주방 ‘위쿡’은 이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입주 업체에 메뉴 개발부터 푸드 스타일링, 판촉용 음식 사진·영상 촬영 방법까지 알려줬다.
위쿡 내에서는 입주 업체를 교육한다고 말하는 대신 네트워크를 이어준다는 표현을 쓴다. 입점 업체 간 커뮤니티와 전문가 노하우 전수를 돕는 직원들에게도 커뮤니티 매니저라는 이름을 붙였다. 위쿡 관계자는 “입점 업체에 필요한 것은 교과서적인 내용이 아니라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노하우”라며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전문가들을 연결해줘 해결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한예슬씨는 올해 1월 커뮤니티 매니저로 위쿡에 입사했다. 한씨는 입점 업체들이 온라인 배달용 음식 사진을 촬영하는 데 애를 먹는 것을 보고 사진 촬영을 도왔다. 그는 취미로 찍은 음식 사진으로 인스타그램에 팔로어 1만3000명을 확보한 인플루언서였다. 위쿡은 한씨에게 푸드스타일링 유료 프로그램도 맡겼다. 플랫폼과 입점 업체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다 뜻밖의 수확을 얻은 사례다.
직접 외식 업체를 운영하며 쌓은 경험을 공유하겠다고 나선 업체도 있다. 공유주방 업체 지에프케이는 오는 21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에 공유주방 브랜드 ‘1번가’ 1호점을 연다. 지에프케이는 2014년 분식업체 열혈분식을 시작으로 사업을 확장해 프랜차이즈 지점을 200여개로 확장했다. 이 경험을 나누기 위해 각 분야 전문가를 영입해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맨손으로 열혈분식을 일군 최영 지에프케이 CEO도 ‘대표 강사’를 자처하고 있다.
농부시장 마르쉐는 농작물을 팔러 나오는 농부들에게 대화하는 법을 가르친다. 마르쉐는 직접 재배한 농작물과 이 농작물로 만든 음식들을 내다 파는 곳이다. 믿을 수 있는 먹거리를 거래하기 위해 환경운동가와 문화 기획자들이 모여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추구하는 바도 독특하다. 일단 장이 열리면 평소 말수가 적은 농부들도 자신이 내놓은 상품에 관해 손님들과 대화를 나눠야 한다. 마르쉐 운영팀은 대화를 어려워하는 이들에게 대화하는 방법을 직접 알려준다. 마르쉐 관계자는 “입점 업체들이 어떤 재료로 요리하고 어떻게 작물을 키웠는지 미리 파악하고 워크숍을 열어 이 주제에 관해 스스로 말하게 돕는다”며 “생산자들은 소비자와 말할 기회가 없어 대화할 준비가 안 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