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도 일상 즐기는 평범한 사람이죠”

입력 2019-08-14 04:01 수정 2019-08-14 13:18
김대월 나눔의 집 학예실장이 13일 전시회 ‘할머니의 내일’이 열리는 서울 인사동 갤러리이즈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사진 앞에 서 있다. 김 실장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평범한 삶을 보여주기 위해 전시회를 기획했다. 본인 제공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특별하신 분들이 아닙니다. 혼자 아이스크림 못 먹으면 토라지기도 하는 우리와 똑같은 분들이에요. 단순한 피해자로 볼 게 아니라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으로서 아픔을 공감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요.”

서울을 포함한 국내 6개 도시와 독일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일상을 영상과 사진, 그림에 담아 전시하고 있는 전시 기획자 김대월(34)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학예실장은 전시회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할머니의 내일’로 이름 붙여진 순회 전시회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과 해방 이후의 삶을 보여주는 사료 및 유물, 사진, 그림을 선보인다.

서울 인사동 갤러리이즈에서 13일 만난 그는 “위안부 문제의 첫 단추를 다시 꿰기 위해 일반인으로서의 할머니들 모습을 보여주게 됐다”고 말했다. 수요집회에 나온 ‘피해자’가 아닌 일상을 즐기는 평범한 할머니를 조명했다는 얘기다.

김 실장은 “일본이 요즘처럼 경제 보복하는 상황에서 사죄에 대한 할머니들의 기대는 더욱 꺾였다”며 “그래서 후세대가 사과를 받아주길 바라는데 그게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부분을 가장 걱정한다”고 말했다. 모두 세상을 떠난 뒤에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이어질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할머니들을 단순히 피해자로만 볼 게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시물은 할머니들이 평소 어떻게 생활하는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는 사진과 영상이 주를 이룬다. 그중 고(故) 김화선 할머니가 심리치료 과정에서 그린 ‘결혼’이란 그림이 눈에 띈다. 할머니는 평범하게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사는 게 소원이었다.

전시장 한편에서 방영되는 영상은 소소한 웃음을 준다. “박옥선은 노래도 잘 못하는데 아무데나 가서도 노래 하라면 해. 그렇게 춤추고 노래하고 놀면 다음 날 못 일어나” “강일출이 집에 있으면 집이 분주해. (집에) 파리가 들어온 것처럼 앵앵거려” 등 우리가 알지 못했던 할머니들의 얘기가 나온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모습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할머니들은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머리에 태극기 손수건을 두른 채 막대풍선을 두드린다. 양볼에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대한민국’을 외친다. 우리 대표팀이 골을 넣으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폴짝폴짝 뛴다. 김 실장은 “TV에서 시위하고 우울한 할머니들 모습만 봤던 터라 처음에는 나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며 “혼자 아이스크림 못 먹으면 토라지기도 하는 우리와 똑같은 분들”이라고 했다.

김 실장은 “할머니들은 일본의 사죄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삶의 모든 부분에서 피해자로 보이고 싶어하는 건 아니다”고 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필요에 의해 할머니들을 24시간 365일 피해자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이건 할머니들도 원치 않는다”며 “우리가 할머니들이 항상 일본 대사관 앞에 있길 바라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