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소재 수입 ‘벨기에 루트’ 확보했나

입력 2019-08-12 04:01

삼성전자가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품목인 포토레지스트(감광액)를 벨기에와 일본 업체의 합작 법인에서 조달하는 방안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의 소재 수출 규제가 강화된 지 한 달이 넘어가자 일부 일본 기업들도 ‘고객 지키기’ 차원에서 공급망 다변화에 나서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까다로워진 규제를 피해 일본 기업이 제3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한국에 공급하는 루트를 찾고 있는 것이다. 국내 업체들도 당장 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진 않게 되면서 업계는 한숨 돌린 분위기다.

일본 경제전문 매체인 ‘닛케이 아시아 리뷰’는 11일 삼성전자가 반도체 회로를 그리는 데 쓰이는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를 벨기에에서 조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일본 화학업체인 JSR과 현지 연구센터 IMEC의 합작 법인이 생산한 포토레지스트를 공급받게 됨에 따라 6~10개월 분의 재고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정부가 오는 28일부터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 시행에 돌입하지만, 일본기업이 참여한 해외 합작사에까지 통제 범위를 넓히지는 못해 국내 업체가 소재 수급을 받을 길은 열려 있는 셈이다. 다만 닛케이 아시아 리뷰가 발언을 인용한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이를 부인했다. 삼성전자 출신인 박 교수는 “닛케이 아시아 리뷰와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 해당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최근 신에쓰화학이 신청한 포토레지스트의 한국 수출을 예상보다 빠른 30여일 만에 허가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반도체 기업이 주고객인 자국 화학 소재 업체들이 글로벌 공급 사슬 내에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자인한 모양새다.

일본의 또 다른 수출 규제 품목인 불화수소 제조업체들도 해외 공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모리타화학공업이 올해 안에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고순도 불화수소를 한국에 수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모리타 야스오 사장은 “수출 규제 문제가 계속되면 일본 대신 중국에서 한국으로 물량을 보낼 수도 있다”고 말하며 주요 고객인 한국에 우회 공급망을 통해서라도 수출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국내 반도체 업계가 적극적으로 대체재 찾기에 나서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일본 업체들이 자국 정부 방침과는 별개로 실리를 택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기업들이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만 해외에 위치한 법인이라면 얘기가 다르다”면서 “제3국에 있는 일본 자회사가 소재를 한국에 수출하는 것은 일본 정부의 제재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와는 별개로 수출 개별허가 품목을 추가로 지정하지 않으면서 관련 업계는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국내 기업은 일본 정부로부터 자율준수프로그램(ICP) 인증을 받은 기업에서 3년 단위 포괄허가를 적용받을 수 있어 지금처럼 큰 차질 없이 일본산 전략물자 관련 제품 수입이 가능하다. 특히 핵심 소재의 일본 의존도가 높은 국내 배터리 업계의 경우 주 거래처인 도레이, DNP, 쇼와, 덴코 등이 ICP 인증을 받은 곳들이라 당장의 위협은 없는 상황이다. 추가 제재가 등장할 위험은 있지만 이에 대비할 시간은 벌어놓은 셈이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한·일 무역 분쟁 상황의 악화 우려로 D램 가격이 올라가고 있지만 실제 생산 차질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