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세도 있는데… 개인택시 기사 혈압·혈당검사 놓고 갈등

입력 2019-08-12 04:05

정부가 이르면 다음 달부터 만 65세 이상의 고령 택시기사 의료적성검사 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개인택시조합이 ‘결사 반대’를 외치면서 차질을 빚고 있다. 의료적성검사 기준에 혈압·혈당 수치가 포함돼 있어 고령자 비중이 높은 개인택시 기사에게 ‘가혹한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개인택시 기사 가운데 고령자 비중은 37%에 육박한다. 이들이 집단적으로 의료적성검사에 반대하고 나서면 ‘카풀 논란’에 이어 정부와 택시업계 간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 8일 국토교통부와 택시업계에 따르면 4대 택시단체(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 중 개인택시조합이 고령 택시기사의 자격유지검사 가운데 의료적성검사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국토부 핵심 관계자는 “개인택시조합을 제외한 나머지 3개 단체는 의료적성검사 도입에 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택시조합은 검사 기준에 혈압과 혈당이 포함돼 있어 반대한다.

국토부는 의료적성검사의 세부 검사항목을 확정하고 오는 9월 또는 10월 시행을 목표로 오는 19일까지 행정예고를 한다. 검사항목에는 신장과 체중 계측, 혈압, 혈당, 시야각, 악력, 일어나 빠르게 걷는 능력 등의 운동·신체기능 기준이 포함됐다.

혈압의 경우 수축기 160㎜Hg 미만, 이완기 100㎜Hg 미만이다. 혈당은 말초 식전혈당 기준 126㎎/dL 미만으로 기준을 넘어가면 당화혈색소(HbA1c)를 추가 검사한다. 혈액 검사 결과 당화혈색소 기준이 9% 미만이면 자격이 유지된다.

개인택시조합은 혈압과 혈당 2가지 기준을 아예 항목에서 빼라고 요구하고 있다. 고령자에게 고혈압과 당뇨는 흔한 질환인데, 이를 자격 기준으로 삼는 건 문제라고 주장한다.

특히 고령자가 많은 개인택시 기사들이 혈압·혈당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대량 실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두 기준을 삭제하지 않으면 자격유지검사 자체를 거부하겠다는 극단적 의견도 나온다. 한 개인택시 기사는 “혈압·혈당 기준이 안전운행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운수종사자 관리시스템에 등록된 전국 택시기사(약 27만명) 중 개인택시 기사는 60%(16만2199명)다. 개인택시 기사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자는 5만9806명(36.9%)이다. 80세 이상 운전자는 631명인데, 이 중 46%인 289명이 서울 지역에 등록돼 있다. 최고령은 대구에서 등록한 93세 기사다.

국토부는 의료 전문가 의견을 바탕으로 해외사례를 참고해 의료적성검사 기준을 결정했기 때문에 기준 재검토는 없다는 입장이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 미국 등에선 운전면허 응시·갱신 항목에 운전할 수 있는 적정한 혈압·혈당 기준값을 제시하고 있다. 그만큼 중요한 건강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현재 혈압·혈당 관련 기준이 아예 없다. 고령 기사들이 고혈압·당뇨와 같은 질환을 흔하게 앓고 있다면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

국토부 관계자는 “혈압과 혈당은 안전운전을 위해 반드시 안정적 수준으로 유지돼야 한다. 고혈압과 당뇨는 심근경색, 뇌졸중, 고혈당·저혈당 쇼크를 일으킨다. 이는 운전 중 실신을 일으킬 수 있는 의학적 상태다. 만약 승객을 태우고 있다면 택시기사뿐 아니라 승객의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