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8일 청와대에서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하고 “일본이 수출 규제를 하지 않을 수 있고, 실제 피해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불확실성’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 품목으로 지정했던 소재 3종 가운데 포토레지스트(반도체 기판에 바르는 감광액)의 수출을 허가했지만,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가)에서 제외한 조치는 유지하고 있는 만큼 긴장을 늦추지 말고 대응책 마련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1시간40분간 이어진 회의에서 “일본이 3개 품목을 개별허가 품목으로 바꿨을 때부터 우리 정부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단기, 장기대책을 준비하고 발표해 왔다”며 “불확실성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위협에 대해 어떤 대응책이 필요한지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말했다.
일본을 향한 날선 발언도 이어갔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보복 조치에 대해 “결국 일본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승자 없는 게임”이라며 부당한 조치를 하루속히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일본의 경제보복이 결국 일본 기업과 경제에도 타격을 입히는 부메랑이 될 것이라 경고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결정을 내린 직후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때보다는 발언의 수위가 낮아졌지만 문 대통령은 여전히 일본이 대화 테이블로 나오도록 압박하기 위해 단호한 메시지를 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은 또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과도하게 한 나라에 의존한 제품에 대해서는 수입처를 다변화하고 자립도를 높일 수 있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교수는 “일본 수출 문제에서 파생되기는 했지만 기술혁신과 환경, 복지, 조세 문제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다른 교수는 “한국 경제가 어떻게 하면 외풍에 시달리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지가 토론의 주를 이뤘다”고 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날 오세정 서울대 총장과 만찬을 함께하며 인공지능(AI)과 혁신성장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일각에서는 부품·소재 경쟁력 강화 등 일본 관련 대응책에 관한 의견을 듣기 위한 자리라는 관측이 나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면서도 “일본의 규제를 통해 우리 산업을 다각화할 필요성이 생겼고, 이에 따라 현 정부 경제기조 중 하나인 혁신성장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김 실장은 5대 그룹 경영진과 조찬회동을 갖고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따른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과 공영운 현대차 사장,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 권영수 LG그룹 부회장, 황각규 롯데 부회장 등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회동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가 수출 비자 등 기업이 가장 원하는 지원책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조정하는 과정”이라며 “일본과의 갈등에서 기업을 앞세우는 것이 절대 아니다. 정부는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사태 해결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