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공포 일상화된 미국… 오토바이 소음에도 대소동

입력 2019-08-09 04:08
총격 사건 피해자가 입원한 데이턴 마이애미밸리 병원 앞에서 시민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아기로 희화화한 대형 풍선 주변에서 시위를 벌이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주말 미국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잇달아 벌어진 이후 미국인들이 거센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길거리를 걷던 시민들이 큰 소음을 총기 격발 소리로 착각하고 공황상태에 빠진 채 대피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국인들에게 총기 범죄에 대한 공포가 일상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지난 6일 밤(현지시간) 뉴욕 중심가 타임스스퀘어에서 정체불명의 폭음이 들려왔다. 직후 거리를 걷던 시민들이 공포에 질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바닥에 엎드리거나 주변 건물의 출입문을 두드리며 들여보내달라고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어린아이가 우는 소리도 들려왔다.

타임스스퀘어 일대는 순식간에 전쟁터가 됐다. 의류 브랜드 ‘포에버21’ 직원들은 공포에 질린 시민들이 매장으로 몰려들자 이들을 지하층으로 안내했다. 뉴욕의 유명 치즈케이크 가게인 ‘주니어스 치즈케이크’에서는 손님들이 식기를 떨어뜨리고 탁자와 의자를 뒤집는 등 소동이 빚어졌다. 도망치던 도중 신발을 잃어버린 사람도 있었다.

가족과 함께 뉴욕 여행을 온 여성 안잘리카 샤마는 한 의류매장 남자화장실에 숨어들었다. 샤마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화장실에 있는 동안 괴한이 들이닥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딸과 아들 중에 누구를 구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뉴욕 임페리얼 극장의 한 남성 직원은 트위터에 “여성 10명과 함께 화장실에 들어가 불을 끄고 문을 잠갔다”며 “내게 죽음의 순간이 왔음을 받아들여야 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텍사스주 엘패소를 찾아 경찰관들과 악수하며 격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대규모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던 오하이오주 데이턴과 엘패소를 차례로 방문했다. AFP연합뉴스

소동의 원인은 오토바이 엔진 폭발음이었다. NYT에 따르면 타임스스퀘어 지역을 순찰하던 경찰관들은 시민 6명이 오프로드 바이크의 시동을 걸고 공회전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중 오토바이 한 대가 엔진 폭발을 일으키자 시민들이 곧바로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고 한다. 시민들은 “타임스스퀘어는 안전하다”는 뉴욕 경찰의 발표를 접한 뒤에야 은신처에서 빠져나왔다. 한밤중 벌어진 소동에 시민 12명이 골절상 등 부상을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소음을 총기난사로 오인해 소동이 빚어진 사례는 미국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같은 날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인근의 한 쇼핑몰에서 광고판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 놀란 시민들이 공황상태에 빠져 대피했다. 사건 직후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다는 잘못된 보도가 나오면서 혼란을 더욱 키웠다.

7일에는 워싱턴 교외 USA투데이 사옥 인근에서 무장괴한이 목격됐다는 신고가 접수돼 중무장 경찰관이 출동했지만 오인 신고로 판명됐다. 루이지애나주의 한 월마트 매장에서는 두 남성이 말다툼 끝에 서로에게 총기를 겨누자 주변에 있던 손님들이 놀라 도망가는 일도 있었다. 일부 손님은 총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지만 현지 경찰은 총이 발사된 정황은 없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최근 연달아 일어난 대규모 총기난사 사건이 미국인의 공포심을 부추겼다고 보고 있다. 제이 밴배블 뉴욕대 심리학 교수는 “공공장소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뉴스는 사람들이 주변 환경을 해석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큰 소음을 총소리로 해석할 수 있다”며 “다른 사람이 총소리로 받아들이면 나 자신도 거기에 따르게 된다. 실제로 총 쏘는 모습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경우에도 그렇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