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사과유통公 자진 폐업… 공기업 철밥통 깨졌다

입력 2019-08-09 04:04
청송사과유통공사 전경. 청송군 제공

지방 주민들의 혈세로 설립된 한 공기업이 스스로 문을 닫는 사태가 벌어졌다. 사과의 고장 경북 청송군은 이 공사가 지난 5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해산을 결정했다고 8일 밝혔다. 설립된 지 8년 만에 국내 처음으로 자진 폐업한 공기업이란 오명을 뒤집어쓴 것이다.

이 공기업의 폐업은 국민 혈세로 방만하게 운영돼온 우리나라 공기업들의 행태에 경종을 울리는 사태로 해석된다. 주인의식 없이 천편일률·무사안일로 일관해온 공기업 직원들, 나랏돈과 혈세를 아무렇게나 펑펑 낭비한 간부들, 개인 비리에 얼룩져 사법처리까지 당해야 했던 양심불량…. 이 같은 행태는 비단 이 지방공기업에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창립 주주로 참여했던 사과재배 농민들은 “10년도 되지 않아 이 공기업이 패망의 길로 접어들게 된 원인은 주인의식과 책임감 없던 직원, 상품(上品)은 빼돌리고 품질이 떨어지는 사과만 공사에 맡긴 재배 농민들의 양심불량”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주주총회에서는 전체 발행 주식 22만1600주 가운데 89.2%인 19만7700주를 가진 주주들이 해산투표에 참여해 찬성 98.4%, 반대 0.9%, 무효 0.7%로 나왔다. 부실경영 자본잠식이 폐업 원인으로 등장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경영진과 직원, 농민들의 만성적인 주인의식 부재가 결정적이었다는 지적이다. 군이 임명한 직원들은 공무원에 준하는 연봉을 받으면서도 책임감이 ‘제로’였고, 사장은 임기를 채우기 위해 군 당국의 눈치 보기에만 급급했을 뿐 판로 개척 등 경쟁력 강화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농민들의 양심불량도 자멸을 재촉했다. 수확한 사과 가운데 좋은 건 개인 판매를 위해 집에 숨겨놓고 품질 가장 낮은 사과만 유통공사에 맡겼다.

2014∼2016년 공사를 경영한 사장 등이 저지른 비리도 치명적이었다. 경찰은 2017년 9월 금품을 주고받은 혐의로 사과유통공사 임직원 5명과 전 청송군수 A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2011년 청송군이 군 예산 18억원(81.2%)과 민간인 투자 4억1600만원(18.8%)으로 설립한 이 공사는 처음엔 사과산업 발전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 청송 전체 사과 생산량의 10% 이상을 처리해 순이익을 냈던 것. 하지만 2016년 이후 해마다 매출과 사과 처리량이 줄더니 급기자 지난해 결산 결과 누적 적자가 6억3200만원이나 됐다. 그러자 군은 사업 부진, 농민 신뢰 상실, 자본잠식, 조직 붕괴 등으로 지난 6월 해산 절차에 들어간 것이다.

청송=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