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품목 추가 않고 ‘무기’로 남겨둔 일본

입력 2019-08-08 04:00

일본 경제산업성이 7일 한국을 이른바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공포했다. 시행 시점은 오는 28일이다. 다만 공개된 ‘시행세칙’ 포괄허가취급요령에 추가로 ‘개별허가’ 품목을 지정하지 않아 국내 산업계는 일단 한숨 돌리게 됐다. 당초 추가 규제 강화 품목을 지정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던 만큼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포괄허가취급요령은 화이트리스트 배제 관련 하위 법령으로 1100여개에 이르는 전략물자 품목 가운데 어떤 품목을 수출 절차가 까다로운 개별허가로 돌릴지 결정한다. 따라서 이날 발표가 국내 기업의 추가 피해 규모를 가늠할 척도가 될 것이라고 예상됐다. 하지만 일본은 개별허가 품목을 추가하지 않았다.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로 타격을 받는 국내 산업 분야가 반도체·디스플레이 부문 외에는 늘어나지 않은 셈이다.

일본 정부는 ‘특별일반포괄허가’도 종전과 마찬가지로 열어둔다고 밝혔다. 특별일반포괄허가란 일본의 전략물자 1120개 중 비민감품목 857개에 한해 일본 기업이 정부의 자율준수프로그램(CP) 인증을 받을 경우 개별허가를 면제하고 3년 단위의 포괄허가를 내주는 제도다. 현재 화이트리스트 국가들에 제공하는 것과 비슷한 혜택이다. 중국, 대만 등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 속하지 않음에도 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지 않는 이유는 이 제도 덕택이다.

예상보다 낮은 강도의 시행령에 일본 정부가 국제사회의 여론 악화와 글로벌 공급 체인 내에서 자국 기업들이 겪을 피해를 의식해 숨고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한국에 대한 공세 수위를 낮췄다고 판단하기엔 이르다.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라는 전체 기조의 틀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테일에 해당하는 시행세칙도 일본이 자의적으로 변경할 수 있어 언제든 개별허가 품목을 추가 지정할 수 있다.

정부도 일본이 추가 개별허가 품목을 지정하지 않았지만 무역공세 수위를 낮췄다고 보기엔 이르다고 진단했다. 개별허가 품목 추가 지정을 ‘꺼내지 않은 무기’로 유지했다는 분석이다. 우리 입장에선 불확실성이 더 커진 것이다.

특히 일본은 시행령에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대 품목에 한정하지 않고 우회 수출이나 목적 외 전용 등에 엄정 대처한다”는 표현을 명시했다. 한국 측 대응에 따라 언제든 개별허가 품목을 추가로 지정할 수 있다고 경고한 셈이다.

교역 상대국을 백색국가와 비백색국가로 구분하는 대신 A, B, C, D그룹 체계를 채택해 한국을 B그룹으로 분류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경제 보복이 아닌 수출관리 세분화’ 라는 자국 입장을 반영한 조치로 보인다.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번 조치는) 안보의 관점에서 수출관리제도를 적절히 실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이형민 기자, 세종=전성필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