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이제 막 5살이 됐다. 스카이린 잼로스키는 그리 길지 않은 자신의 인생에서 최악의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가 히스패닉계 이민자를 겨냥한 증오범죄로 추정되는 총기난사 사건으로 사망했다는 비보였다.
어머니의 소식을 들은 스카이린은 눈물을 흘리며 “우리 아빠는 죽었나요?”라고 할머니에게 물었다. “그래”라는 대답이 따라왔다. 소녀의 의붓아버지는 엄마와 함께 총을 맞고 숨졌다. 소녀는 훌쩍이며 또 물었다. 부모를 죽인 총격범에 대해서였다. “그는 이제 나를 쏘러 오나요?”
미국 CNN방송은 6일(현지시간) 미 텍사스주의 엘패소 총기참사로 부모를 모두 잃은 5살 소녀의 사연을 전했다. 총격범 패트릭 크루시어스(21)는 지난 3일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엘패소의 대형마트인 월마트에서 자동소총를 난사해 22명을 숨지게 하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그는 사건 발생 직전 온라인에 증오로 가득찬 반(反)이민 선언문을 올려 경찰은 증오범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스카이린의 어머니 조던 안촌도와 아버지 안드레 안촌도는 유치원 입학을 앞둔 큰딸 스카이린의 준비물을 사러 월마트에 들렀다가 참변을 당했다. 사건이 발생한 주말에는 새 학기를 준비하러 가족들이 붐볐다. 스카이린은 치어리딩 수업을 받는 중이었고, 생후 2개월 된 남동생 폴 길버트만 부모와 함께 쇼핑몰에 갔다.
크루시어스가 조던을 총으로 겨냥하자 안드레는 아내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졌으나 두 사람 모두 사망했다. 스카이린의 외할머니는 “총격범이 조던을 겨냥하자 안드레가 조던 앞으로 뛰어들었다”며 “총알이 안드레를 관통한 뒤 조던까지 덮쳤다”고 말했다. 조던이 머리에 총을 맞으면서도 본능적으로 길버트를 감싸며 넘어진 덕분에 아기는 골절상만 입었다.
스카이린과 여동생 빅토리아, 길버트까지 3남매는 총기사고로 한순간에 부모를 잃으면서 친척들의 손에 맡겨졌다. 3남매의 외할아버지인 폴 잼로스키는 “슬픈 것은 우리가 있더라도 (아이들의) 엄마와 아빠를 대신해줄 수 없다는 것”이라며 “어느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고 눈물을 흘렸다. 아이들의 이모인 레타 잼로스키는 “스카이린에게 이제 같이 지내자고 하면 ‘나쁜 사람 때문인가요? 저한테도 찾아오기 때문인가요?’라고 묻는다”며 “이제 막 5살이 된 아이가 벌써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은 비인간적”이라고 말했다.
유족들은 총격범 크루시어스를 용서한다고 밝혔다. 아이들의 외할머니인 미스티 잼로스키는 “우리는 진심으로 그를 용서하고 그를 위해 기도한다”며 “그가 신을 찾길 바란다. 하나님은 그가 사랑할 수 있도록 가르쳐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크루시어스는 체포 당시 후회나 반성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총기난사 후 크루시어스의 얼굴을 직접 봤다는 경찰 관계자는 “아주 차가운 얼굴(stone cold look)이었다”며 “31년간 경찰로 복무하면서 살인범, 강도를 수없이 봤지만 (크루시어스의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표정이었다”고 CNN에 말했다.
그렉 알렌 엘패소 경찰서장은 “크루시어스는 (조사에) 협조적”이라면서도 “어떤 뉘우침을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크루시어스는 수감 기간 경찰에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