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용 인재영입 경쟁 시동… 새 인물 말고 새 정치는요?

입력 2019-08-10 04:05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총선용 인재를 영입하기 위한 정치권의 소리 없는 물밑전쟁이 시작됐다. 인재 영입의 핵심은 ‘신선한 피 수혈’이다. 여야가 선거를 위해 새로운 인물을 당의 간판으로 내세우는 것은 자신들이 구태를 벗었음을 국민들에게 어필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역대 총선에서 승리한 당을 돌이켜보면 어떤 식으로든 파격적인 인재 영입이 있었다.

세대교체·혁신공천이 성공 공식

‘인재 영입’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96년 15대 총선부터다. 그때나 지금이나 핵심 키워드는 ‘세대교체’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주도한 신한국당의 인재 영입은 세대교체에 방점이 찍혔다. 김 전 대통령은 자신과 각을 세웠던 이회창 전 국무총리를 선거대책위원장으로 내세웠다. 이때 ‘골수 운동권’이던 40대의 김문수(전 경기도지사)와 50대 초반의 이재오(전 특임장관)가 영입됐다. ‘모래시계 검사’로 인기를 얻은 40대의 홍준표(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병원장 출신 40대 정의화(전 국회의장)도 발탁됐다.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 30대 김영춘(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영입됐으나 15대 총선에서는 낙선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젊은 피 수혈에 적극적이었다. 15대 총선에서 천정배·정동영·추미애(현 의원), 신기남(전 의원) 등 개혁 성향 전문직 인사들을 영입해 좋은 반응을 얻었고, 2000년 16대 총선에서도 대학 총학생회장을 지낸 이인영·우상호(현 의원), 임종석(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1980년대 운동권을 대거 영입해 출마시켰다.

2004년 17대 총선 때도 혁신 공천이 대세였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창당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필두로 40대 정치 신인들을 전면에 내세워 결국 100석이 넘는 의석을 얻는 데 성공했다. 나경원·유승민·이혜훈 의원이 이때 입성한 40대 정치 신인의 대표 주자다. 특히 17대 국회에는 여성 정치인이 대거 입성했다. 16대 국회에서 여성 의원은 전체 의석의 5.6%(16명)에 불과했지만, 17대에선 헌정 사상 최초로 두 자릿수 비율인 13%(39명)를 기록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재 영입도 성공 사례로 꼽힌다. 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 대표 시절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영입을 통해 당 이미지를 바꾸면서 지지율 반전을 꾀했다. 표창원·조응천·박주민·이철희 의원, 삼성전자 상무 출신 양향자 전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을 지낸 김종인 전 대표가 이때 영입됐다.

사회적 약자를 대표하는 이들도 인재 영입 때 우선적으로 고려된다. 2012년 19대 총선 때 새누리당(한국당 전신)에서 탈북민 몫으로 조명철 의원이, 결혼이주민 몫으로 이자스민 의원이 배지를 달았다. 내년 총선에서도 취약계층 몫의 비례대표 후보가 얼마나 등장할지 관심이 쏠린다.


‘한국형 인재 영입’의 한계

총선을 한두 달 앞두고 다양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전문가들을 마구잡이로 영입하는 것이 한국형 인재 영입의 특징이다. 문제는 선거 직전에 앞다퉈 새 인물을 내세우는 게 ‘보여주기’에 그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선거 때마다 정치권이 인재 영입에 골몰하는 이유는 유권자들의 뿌리 깊은 정치 불신과 혐오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기존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낮으니 선거 때마다 인물 교체 요구가 분출한다는 것이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정당은 기본적으로 유권자들에게 계속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게 정치권 바깥의 유력한 인사들을 영입해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재 영입이 근본적 정치 쇄신으로 이어지지 않고 일회성 땜질 처방에 그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뉴 페이스’가 정치권에 들어와도 정치적 훈련 과정이 부재한 탓에 새로운 대안 세력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6대 국회부터 지금까지 매번 인물이 40%씩 물갈이됐는데 국회가 나아졌다는 평가는 없다”고 꼬집었다. 김관옥 계명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도 당을 주도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동력은 전혀 없는 편”이라고 진단했다.

인재영입위 핵심은 공정성·투명성

병참기지 역할을 하는 각 당 인재영입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에 관심이 쏠린다. 한국당은 지난 3월 일찌감치 인재영입위를 출범시켰다. 3선의 이명수 의원이 위원장을 맡았다. 계파색이 옅어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지적을 피할 수 있고, 조직 경험이 풍부해 두루두루 필요한 인재를 영입하기에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한국당 인재영입위는 물밑접촉도 없는 상태에서 야구 스타 박찬호와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 등을 거론했다가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눈총을 받기도 했다.

민주당은 인재영입위를 이해찬 대표 1인 체제로 구성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한때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이 거론되면서 ‘친문 인사’ 논란이 일자 이 대표 체제로 가닥을 잡았다. 계파 갈등 잡음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전문가들은 인재 영입 과정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보통 누가 영입되는지가 미리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유권자 입장에선 영입 과정이나 기준을 알기 어렵다. 공천권자의 측근을 앞세운 경우엔 필패했다. 김관옥 교수는 “정치 비전에 대한 검증은 전혀 없이 인지도로만 영입 여부를 따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향후 정치 발전에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현우 교수는 “지금의 인재 영입은 정당이 ‘총선 승리’라는 단기적 목표에만 집중한 과정에서 나오는 잘못된 현상”이라며 “정당에서 자체적으로 인재를 키우지 못한 것에 대해 먼저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재희 김용현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