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환율전쟁 포문… “중국 경제 무너지고 있다” 압박

입력 2019-08-07 04:05
중국 장쑤성 난퉁의 한 은행 지점에서 6일 은행원이 지폐를 세고 있다. 그의 앞에 중국 100위안권과 미국 100달러권 지폐 뭉치가 쌓여 있는 것이 보인다. 미 재무부가 5일(현지시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서 글로벌 환율전쟁 우려가 본격화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이 5일(현지시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전격 지정하면서 미·중 무역전쟁이 전면전 양상으로 비화되는 모양새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중국과의 대화에 여전히 열려있다는 입장을 함께 내놨다. 환율조작국 지정으로 혼란에 빠진 시장을 잠재우는 동시에 미·중 무역협상을 유리하게 풀어가겠다는 의도다.

미국 재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스티븐 므누신 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권한으로 중국이 환율조작국이라는 것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미 재무부는 또 “중국의 불공정한 경쟁 우위를 제거하기 위해 므누신 장관이 국제통화기금(IMF)과 함께 개입(engage)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통상적으로 1년에 2회 발표하는 ‘주요 교역국의 거시경제 및 환율정책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면서 환율조작국을 지정하는데 이번 조치는 그런 절차 없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에 대한 분노가 전격적인 지정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트럼프 대통령은 공약을 실행에 옮겼다.

환율조작국은 특정국가에 대해 불공정한 경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환율을 조작하는 국가를 일컫는 말이다. 미국은 현저한 대미 무역흑자 및 상당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한 국가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왔다. 미·중은 향후 1년간 중국의 환율 저평가와 지나친 무역흑자를 시정하기 위한 양자협의를 진행한다. 중국으로선 환율을 바로잡으라는 미국 측 압박에 직면하게 된 셈이다.


래리 커들로 미국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6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경제는 무너지고 있다. 중국은 20년 전과 같은 경제 강국이 아니다”며 “중국은 우리보다 더 큰 타격을 입고 있다”고 말했다. 커들로 위원장은 “미국은 협상을 원한다”며 “우리는 9월 중국 협상팀의 방미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그간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근거법은 2015년 오바마 행정부가 제정한 ‘교역촉진법’이었다. 1988년 제정된 종합무역법에 따른 환율조작국 지정이 자의적이라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교역촉진법상 지정 기준은 ‘현저한 대미 무역흑자’ ‘GDP 2% 초과 경상수지 흑자’ ‘지속적인 일방향 외환시장개입’의 3가지다. 세 요건을 모두 충족하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고 2가지 요건을 충족하거나 대미 무역 흑자 규모가 과다할 경우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된다.

중국을 관찰대상국으로 분류해온 미국은 지난 5월 발표한 상반기 환율보고서에서도 중국의 관찰대상국 지위을 유지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날 종합무역법에 기반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교역촉진법만으로는 환율조작국 지정이 여의치 않자 과거의 무기를 꺼내든 셈이다. 종합무역법은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 자체가 없다.

종합무역법에 근거해 환율조작국을 지정하면 교역촉진법보다 더 광범위한 제재가 가능해진다. 교역촉진법에 따른 지정의 경우 ‘미국 기업들의 중국 투자 제한’ ‘중국 기업의 미국 조달시장 진입 금지’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한 환율 압박’ 등 4가지 제재 내용이 정해져 있지만, 종합무역법은 ‘해당 국가의 경제 및 환율 정책을 압박한다’는 포괄적 규정만 있어 적용 범위가 더 넓다.

이형민 기자,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