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방문했던 여행객은 앞으로 미국을 방문할 때 무비자 입국을 할 수 없게 됐다. 미국 정부는 북한 방문·체류 이력이 있는 여행객에 대해 전자여행허가제(ESTA)를 통한 무비자 입국을 5일(현지시간)부터 제한키로 했다. 최대 3만7000명에 달하는 우리 국민이 실질적으로 불편을 겪게 되는 조치다. 갑작스러운 발표로 미국행을 준비하던 이들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도 퇴임 후에는 비자를 받아야 미국 방문이 가능해진다.
ESTA는 비자면제프로그램(VWP)에 가입한 한국 등 38개국 국민에 대해 최대 90일간 비자 없이 입국을 허용하는 제도다. 이번에 제한 조치가 적용되는 대상은 2011년 3월 1일 이후 북한을 방문 또는 체류한 이력이 있는 여행객이다. 2011년 3월 1일 이후부터 지난달 말까지 한국인 3만7000여명이 통일부로부터 방북 승인을 받았다. 다만 통일부는 “승인을 받고도 방북하지 않은 인원이 있을 수 있고, ‘공무원이 공무로 간 경우’는 예외여서 실제로 제한 조치에 해당하는 인원은 3만7000여명보다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방북 이력이 있더라도 미국 방문 자체가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업무, 관광 등 목적에 맞는 비자를 발급받으면 미국에 입국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무로 북한을 다녀왔을 경우에는 공무 목적 방문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제시하면 예외적으로 ESTA를 통한 입국이 가능하다. 외교부 당국자는 “현재의 지위에 관한 것으로, 적용 기준은 방문 목적이 아니라 지위”라고 말했다. 공무 성격으로 북한을 방문했어도 신분이 공무원이 아닐 경우에는 무비자 입국이 불허된다는 뜻이다.
지난해 9월 평양을 방문했던 문 대통령의 경우 재임 중에는 무비자 미국 방문이 가능하다. 하지만 대통령 퇴임 후에는 민간인 신분이기 때문에 비자를 발급받아야 미국을 방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특별수행원으로 동행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도 앞으로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미국 측은 2017년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한 이후 관련 절차에 따라 VWP 적용을 제한한다고 설명했다. 테러지원국을 방문한 사람들은 미 국내법에 따라 VWP 적용을 제한받게 돼 비자 없이는 미국을 방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조치는 한국 외 37개 VWP 가입국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2011년 3월 이후 이란, 이라크, 수단, 시리아, 리비아, 예멘, 소말리아를 방문했을 경우에도 ESTA 발급이 불가능하다.
미국은 한 달 전쯤 우리 정부에 이번 조치를 통보하면서 구체적인 방북자 명단은 요청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국 측과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