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미와 협상 앞두고 몸값 올리기… 물밑접촉 안 풀리는 듯

입력 2019-08-07 04:01

북한이 6일 한국과 미국을 향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러면서 단거리탄도미사일 도발을 또다시 감행했다. 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 실무협상을 앞두고 한·미 연합 지휘소연습(CPX)을 핑계로 ‘몸값’ 올리기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 외무성은 이날 대변인 담화에서 “앞에서는 대화에 대해 곧잘 외워대고 뒤돌아 앉아서는 우리를 해칠 칼을 가는 것이 미국과 남조선 당국이 떠들어대는 ‘창발적인 해결책’이고 ‘상식을 뛰어넘는 상상력’이라면 우리 역시 이미 천명한 대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 군 당국이 전날 CPX에 돌입한 데 따른 반발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앞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 신년사에서 ‘새로운 길’이란 표현을 먼저 사용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미국이 세계 앞에서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일방적으로 그 무엇을 강요하려 들면 우리로서도 부득불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은 1월과 이날에도 ‘새로운 길’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이 고비를 맞을 때마다 ‘새로운 길’ 엄포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가 김 위원장 신년사가 발표된 다음 달(올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됐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형적인 북한의 협상 전략”이라며 “김 위원장이 미국 측에 올 연말을 협상 시한으로 통보한 만큼 북한이 먼저 대화의 판을 깰 수는 없다”고 분석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북·미 실무협상이 임박한 가운데 북한이 기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북한 외무성도 담화에서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우리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혀 대화의 판 자체를 흔들지는 않았다. 다만 “군사적 적대행위들이 계속되는 한 대화의 동력은 점점 더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덧붙였다.

통일부는 이날 배포한 ‘북한 정세 동향’ 자료에서 “최근 북한의 연이은 군사행동은 내부 결속 및 향후 정세 국면에서 주도권 및 협상력 제고 차원”이라고 평가했다. 협상력을 키우려는 목적이 크다는 분석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우리민족끼리’ 등 인터넷 선전매체를 통해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며 “현재 남·북·미 모두 상황을 관리하는 정세”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에 북한이 미국을 직접 비난한 것을 두고 북·미가 실무협상 전 물밑접촉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은 지난달 25일 러시아 이스칸데르급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때는 미국을 거론하지 않고 한국을 향한 엄중한 경고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엔 “미국과 남조선 당국의 군사적 적대행위들이 위험 계선에 이른 것과 관련하여 이를 준열히 단죄 규탄한다”며 미국을 직접 언급했다. 조한범 위원은 “영변 핵시설 이상을 내놓지 못하겠다는 북한과 영변 이상을 내놓으라는 미국의 입장이 충돌하고 있는 것 같다”며 “북한이 향후 실무협상에서 미국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