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미국이 자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음에도 미 농산물 구매 중단을 선언한 것 외에 별다른 보복 조치를 아직 언급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조치에 대응할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게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중국 전·현직 지도부가 현안을 논의하고 노선을 정하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 기간이어서 즉각 대응 방안을 내놓기 어려운 탓도 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6일 성명을 내고 “미국 재정부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것에 깊은 유감의 뜻을 밝힌다”며 “이 꼬리표는 미 재정부가 스스로 정한 소위 환율조작국의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인민은행은 “이런 제멋대로의 일방주의와 보호주의 행동은 국제 규칙을 심각하게 파괴하는 것으로, 세계 경제와 금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관영 환구시보는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이 중국에 큰 피해를 주지 못한다고 일축했다. 환구시보는 “2년 전이었다면 환율조작국 지정으로 대중 관세 인상이 우려됐겠지만 지금은 미국이 이미 대규모 추가 관세를 매기고 있다”고 비꼬았다. 이어 “환율조작국이라는 딱지는 가치가 현저히 떨어져 미국의 허장성세일 뿐”이라며 “중국은 무역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끝까지 미국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은 앞서 기자 문답을 통해 “국무원 관세세칙위원회는 8월 3일 이후 새로 거래가 성사된 미국 농산물 구매에 대해 추가 관세를 면제하지 않기로 했다”며 “중국의 관련 기업은 이미 미국산 농산물 구매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농산물 구매중단 이유에 대해선 “미국이 3000억 달러의 중국 상품에 10% 추가 관세 부과를 선언해 양국 정상의 오사카 공동 인식을 엄중히 위배했기 때문”이라며 ‘보복 조치’임을 분명히 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홍콩 시위 사태와 미·중 무역전쟁이 최고조인 상황에서 베이다이허 회의가 개막돼 곤혹스러운 처지가 됐다. 대내외 악재가 집중적으로 불거지면서 시 주석의 리더십을 둘러싸고 전·현직 지도부의 비판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장쩌민 전 국가주석 등 원로 세력의 질책이 거세지면 뜻대로 정책을 펴나가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 베이다이허 회의 기간에 미국이 환율조작국 카드를 꺼내든 것은 시 주석에게 큰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