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깬 아베 “한국이 청구권 협정 깨” 책임 넘겨

입력 2019-08-07 04:07

아베 신조(사진) 일본 총리가 6일 악화일로를 겪고 있는 한·일 관계와 관련해 “한국이 한일 청구권협정을 일방적으로 위반하면서 국제조약을 깨고 있다”며 또다시 한국 측에 책임을 돌렸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결정을 내린 지 나흘 만에 입을 열며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일본 정부가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처리한 직후 “우리 경제를 의도적으로 타격한다면 일본도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며 강경 대응을 예고했으나 아베 총리는 이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이날 히로시마 원폭 투하 74주년을 맞아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열린 희생자 위령식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국가 간 약속을 지킬지에 대한 신뢰의 문제”라며 “한국이 먼저 한일 청구권협정을 비롯해 나라와 나라 사이 관계의 근본을 이루는 약속들을 먼저 확실히 지켜주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제법에 기초해 우리나라(일본)의 입장을 일관되게 주장하며, 한국에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베 총리의 발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협정에 어긋나는 일이며, 갈등 해소를 위해서는 한국 정부의 태도 변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기존 입장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교도통신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관계 악화의 발단이 된 징용소송 문제를 한국 정부가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아베 총리가 문 대통령을 압박한 모양새”라고 분석했다.

아베 총리는 ‘9월 러시아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과 9월 말 유엔 총회, 10월 일왕 즉위식 등을 통해 문 대통령과 대화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문 대통령 참석이 결정됐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며 즉답을 피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군사대국’이라는 야욕을 향한 아베 총리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의 내년도 방위예산이 60조원을 넘어서면서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2012년 12월 아베 총리가 취임한 이래 2013년도부터 7년 연속 증가한 수치로 한국의 올해 국방예산(46조7000억원)보다 13조원 이상 많다. 내년도 일본 방위예산에는 우주·사이버 등 새로운 영역의 방위력 강화 비용도 포함된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