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주 엘패소의 월마트에서 총기를 난사한 총격범이 범행 직전 온라인 커뮤니티 ‘에잇챈(8chan)’에 인종주의 옹호 성명을 올렸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해당 사이트가 주목받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4일(현지시간) 에잇챈이 총격범들의 메가폰(확성기)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인우월주의 테러리즘의 선동 창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올해만 이 사이트에 범행을 예고한 뒤 총격을 저지른 사건이 3건에 달한다. 현지 경찰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범인 패트릭 크루시어스(21)는 사건 발생 19분 전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목의 4쪽짜리 문서를 에잇챈에 올렸다. 그는 게시글에서 자신의 공격을 ‘히스패닉의 텍사스 침공에 대한 대응’이라고 정당화하며 백인우월주의를 찬양했다.
지난 3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이슬람 사원 2곳에서 반자동소총을 난사해 50명을 사망케 한 호주 출신 총격범 브렌턴 테넌트(28)도 범행 전 에잇챈 등에 73쪽 분량의 선언문을 게재했다. 지난 4월 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유대교회당(시너고그) 총격사건 때도 용의자 존 어니스트(19)가 범행 전 에잇챈을 통해 유대인 살해 계획을 밝혔다.
숫자 8을 눕혀놓은 형태가 무한대 기호(∞)와 유사해 ‘인피니티챈’으로도 불리는 에잇챈은 소프트웨터 개발자 프레드릭 브레넌이 2013년 개설했다. 미국의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포챈(4chan)’이 지나치게 이용자들의 게시글을 규제한다는 불만 때문이었다. 브레넌은 에잇챈이 검열 없이 자유로이 의견을 개진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2014년 ‘게이머게이트(비디오게임 문화 관련 성차별주의 논쟁)’ 당시 포챈에서 반(反)페미니즘 글을 올리다 쫓겨난 이용자들이 에잇챈으로 옮기면서 성격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2015년 사이트 운영권이 참전용사 출신에게 넘어가면서 에잇챈은 극우·극단주의자들의 요람이 됐다.
초기 유머·일상글이 주를 이뤘던 게시판은 인종차별주의적 음모론, 백인우월주의 집회 공고 등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총격으로 숨진 피해자들의 수를 인용하며 “고득점을 달성했다”는 글이 게시되기도 한다. 개발자인 브레넌은 사이트 개설을 후회하며 ‘에잇챈 폐쇄’를 강변하고 있다. 그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에잇챈은 세상에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영국 BBC는 에잇챈에 사이버 보안 서비스를 제공해 왔던 회사가 서비스 제공 중단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