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사실상 ‘포치(破七) 선언’(위안화 가치를 달러당 7위안 이상으로 절하)으로 한국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졌다. 코스닥지수는 7% 넘게 폭락하며 2015년 초 수준으로 회귀했다. 3년1개월 만에 사이드카(Sidecar·프로그램매매 일시 정지)가 발동됐지만 하락세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코스피지수도 2% 이상 떨어지며 1940선까지 주저앉았다. 외국인의 ‘팔자’ 공세에 공포심리가 확산되면서 개인투자자의 투매까지 나타났다.
환율은 급격하게 출렁였다. 원·달러 환율은 3년5개월 만에 1200원을 돌파했다. 외환시장에서 위안화 가치의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겼던 ‘1달러=7위안’ 벽이 무너지며 원화 가치도 덩달아 추락했다. 일본 수출 규제, 글로벌 경기 둔화 등 대내외 악재에 시달리던 국내 금융시장은 ‘블랙 먼데이’(검은 월요일)를 연출했다.
국내 금융시장에 충격을 가한 직접 원인은 미·중 무역분쟁의 전면전 조짐이다. 지난 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00억 달러어치의 중국산 제품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맞서 중국 인민은행은 5일 달러당 위안화 환율을 6.9225위안으로 고시했다. 예상보다 높은 환율(위안화 가치 절하)이 고시되자 역외시장에서 위안화 환율은 장중 한때 7.1094위안까지 치솟았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17.3원이 뛴 1215.3원에 거래를 마쳤다. 미·중 무역전쟁에 일본 경제 보복 등이 겹치면서 원화 가치 급락으로 이어졌다.
국내 증시도 직격탄을 맞았다.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51.15포인트(2.56%) 하락한 1946.98에 마감했다. 2016년 6월 28일(1936.22)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바이오 거품’ 논란까지 불거진 코스닥지수는 45.91포인트(7.46%) 떨어진 569.79로 장을 마쳤다. 종가 기준으로 2015년 1월 8일(566.43) 이후 4년7개월 만의 최저치다.
아시아 주요국 증시도 동반 하락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가 1.62%, 일본 닛케이225 평균주가는 1.74% 떨어졌다. 홍콩 항셍지수는 2.88% 하락했다.
시장에선 중국의 움직임을 미국을 겨냥한 ‘선전 포고’로 받아들인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중국의 위안화 움직임은 단순한 경기부양 목적보다 ‘정치적 성격’이 강하다”며 “추가 관세 부과를 선언한 미국을 향해 ‘끝까지 한번 가보자’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의 ‘바닥’을 확인하는 데 꽤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본다. 하인환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10월 폭락장 당시 코스피의 12개월 미래 주가수익비율(PER)은 7.6배였지만 지금은 10.2배 수준”이라며 “가치 부분의 매력이 떨어진 만큼 주가 급락 이후 곧바로 반등이 나타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환율도 한동안 출렁일 전망이다. 민 연구원은 “미·중 무역분쟁으로 글로벌 교역이 악화될수록 원화 가치는 더욱 떨어질 것”이라며 “달러당 1200원 선이 얼마나 빨리 진정되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전규연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연말로 갈수록 원화 강세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안전 자산’으로 꼽히는 일본 엔화 가치는 원화 대비 2%나 상승했다. 달러 대비 가치도 크게 뛰었다. 시장의 불안감이 안전자산인 엔화 매수를 촉진한 것이다. 엔화 강세는 수출·관광 경기에 사활을 거는 일본 정부에 그리 반가운 소식만은 아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