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수사 단계가 골든 타임”… 전직 경찰 조언 받는 성범죄 피의자들

입력 2019-08-06 04:04

성범죄 피의자들이 수사·재판 관련 지식을 공유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최근 ‘전직 경찰 형사팀장님을 영입했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이 카페가 추천하는 로펌과 계약해 변호인을 선임할 경우 전직 경찰 A씨가 법률사무원으로서 경찰 수사 때부터 돕는다는 내용이었다. 해당 로펌 관계자는 5일 “성범죄 사건에서는 ‘골든 타임’인 초기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 경찰에서 첫 조사를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사건의 향방이 갈리고 성패가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로펌 관계자는 A씨의 얼굴 사진과 광역수사대·마약수사대 팀장 등 경력을 공개하며 “실력이 뛰어나고 인맥도 넓다”고 말했다. 경찰 조직에 몸담았던 경험과 관련 지식으로 경찰 수사 단계에서의 활약을 기대한다고도 했다. 카페 회원들은 “초동 수사받을 때 많은 도움이 되겠다” “든든하다”며 기대감 섞인 댓글을 남겼다.

성범죄 피의자들이 형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형사 전문 변호사는 물론 전직 경찰까지 찾고 있다. 미투 운동을 전후로 경찰 등 수사 당국이 성범죄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다. 성범죄를 전문적으로 변호한다는 로펌은 경찰 출신 인사를 잇달아 영입 중이다. 이들은 형사 절차의 초기 단계인 경찰 수사에서부터 잘 대응해야 선처 혹은 불기소를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한다.

성범죄를 전담하는 웬만한 로펌들은 ‘형사팀’을 갖추고 있다. A법무법인은 홈페이지에 무혐의 처분을 끌어낸 성범죄 사건을 소개하며 “전직 경찰 간부, 판검사로 구성된 형사전문팀의 조력으로 가능했다”고 적었다. 일부 로펌은 과거 경찰서 근무지와 경찰대 출신 같은 경력을 내세워 광고한다. B법무법인은 “여성청소년 수사팀장 출신 변호사가 맞춤형 대응을 한다”며 해당 변호사의 경찰 이력을 나열해 놓았다.

YK법률사무소의 김범한 변호사는 “경찰 출신 법조인들은 일종의 ‘전관’”이라며 “경찰 조직의 생리를 잘 알고, 성범죄 관련 수사가 어떤 절차로 진행되는지 디테일한 부분을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감한 성범죄 수사에 대응하는데 경찰 특유의 정보력과 인맥이 유리하다는 의견도 있다.

변호사에 이어 경찰까지 뛰어들 정도로 ‘성범죄 변호 시장’은 커지고 있다. 대검찰청 2018 범죄분석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 발생 건수는 2008년 1만6129건에서 2017년 3만2824건으로 10년 동안 2배 이상 증가했다. 김 변호사는 “2013년 친고죄 폐지와 지난해 미투 운동으로 성범죄 변호사에 대한 수요가 늘었다”고 전했다.

성범죄 피의자를 상대로 한 마케팅도 더욱 공격적으로 변했다. 전직 경찰·검사 등의 변호로 처벌을 피한 성범죄 사건을 ‘성공 사례’라며 과시하는 광고는 흔하다. 지난 1년 사이 유튜브에는 강간죄 고소 대응 방법이나 성범죄 사건 합의 요령·합의금 수준 등을 알려준다며 개별 법인, 변호사를 홍보하는 영상이 다수 업로드됐다.

하지만 경찰 출신을 섭외하더라도 피의자 변호에 크게 유리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 시내 한 경찰서의 여성청소년과장은 “경찰은 판·검사와 달리 인적 네트워크가 뚜렷하지 않고 위계질서도 약해 큰 장점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소헌의 천정아 변호사는 “경찰 출신이라고 해도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며 “경찰 수사를 앞둔 피의자의 몹시 곤궁한 상황을 노린 허위·과장 광고”라고 지적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