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반(反)이민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중남미 출신 히스패닉계의 이민을 ‘미국 침략’이라고 매도했다. 그는 히스패닉계 불법 이민자들을 향해 ‘폭력배’라거나 ‘동물’이라고 막말을 던졌다.
지난 5월 플로리다주 파나마시티비치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의 2020년 대선 유세에선 이런 일도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청중을 향해 “어떻게 하면 그들(이민자들)을 막을 수 있는가”라고 묻자 한 청중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들에게 총을 쏴라(Shoot them).”
수천명의 청중은 환호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미소를 지었다. 이런 위험한 발언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트럼프 대통령은 “팬핸들(프라이팬의 손잡이처럼 생긴 주·플로리다주와 텍사스주 북부 등을 의미)에서는 그런 말을 해도 처벌을 피해갈 수 있다”고 농담을 던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4일(현지시간) 이 모습을 전하면서 텍사스주 엘패소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은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발언들을 떠올리게 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주말 엘패소와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연달아 발생해 수십명의 사상자가 나오자 미국이 큰 충격에 빠졌다. 미 수사 당국은 미국·멕시코 국경지역인 엘패소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의 배경에 대해 인종차별적인 ‘증오범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연이은 총기난사 사건이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론으로 번지는 건 예상됐던 일이다. 그가 중남미 이민자들을 지속적으로 비하했기 때문이다. 그는 민주당의 유색 여성 하원의원 4명과 흑인 중진인 일라이자 커밍스 하원의원도 인종차별 공격의 타깃으로 삼았다.
트럼프 대통령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총기난사 사건들은 2020년 미국 대선의 쟁점으로 부상할 조짐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차별적인 언행이 참사를 불러왔다고 주장하며 이번 총격 사건들을 ‘백인 우월주의 테러리즘’으로 규정했다. 민주당은 총기규제 강화를 촉구했다.
엘패소가 고향인 민주당 대선 주자 베토 오로크 전 하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은 백인 우월주의자”라고 주장했다. 피트 부티지지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백인 우월주의 테러리즘을 용인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우리는 미 총기협회(NRA)와 총기 제조사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총기규제 강화 법안 처리를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처신도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참사가 연이어 발생한 지난 주말 뉴저지주의 한 골프클럽에서 열린 결혼식에 등장했다. 또 엘패소 총격 사건에 대한 트위터 글을 올린 지 14분 뒤 자신의 지지자인 UFC 선수 콜비 코빙턴의 선전을 기원하는 글을 게시했다.
AP통신은 “미국 국민들은 엘패소와 데이턴에서 벌어진 참극이 발생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을 보지 못했다”면서 “그는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준비할 때에야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비꼬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용기에 탑승하면서 “증오는 미국에 발붙일 곳이 없다”고 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