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본의 소재·부품·장비에 의존하는 ‘가마우지 경제’를 ‘펠리컨 경제’로 바꾼다. 목이 묶여 물고기를 잡아도 어부에게 좋은 일만 하는 가마우지가 아니라 부리에 먹이를 넣어와 새끼를 먹이는 펠리컨으로 산업 체질을 바꾸겠다는 선언이다. 국내 소재·부품·장비 산업 육성 뿐만 아니라 대·중소기업, 수요·공급 기업의 상생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다.
정부는 예산·세제·금융 등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독자 공급망을 확보하기로 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 중 20개는 1년 내, 나머지 80개는 5년 내 공급망을 만든다.
정부는 5일 일본 수출규제에 맞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확정·발표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가마우지에서 펠리컨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늦어도 5년 내 일본 규제 품목을 ‘다른 경로’로 조달할 계획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자동차 등 한국의 주요 산업에 필요한 100대 품목을 선정해 공급망을 확충키로 했다.
우선 일본의 수출규제로 수급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20대 품목의 경우 1년 안에 공급 안정화를 추진한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EU)으로 수입국을 다변화하고 국내 생산을 확대한다. 수요 기업 생산라인을 개방해 대체소재의 적합성 테스트도 빠르게 이뤄지도록 지원한다.
이어 5년 내로 80대 품목의 공급망을 확보한다. 매년 1조원 이상 대규모 연구·개발(R&D) 재원을 투자한다. 7년간 총 7조8000억원을 투입해 국내 기업들이 핵심 기술을 확보하도록 지원사격을 한다. 예비타당성조사가 진행 중인 사업 중 핵심 과제는 적기에 투자가 이뤄질 수 있도록 면제를 추진한다. 핵심 소재·부품·장비 기술은 신성장동력·원천기술 R&D 및 시설투자 세액공제 대상에 추가해 세제 혜택도 준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R&D 투자 금액의 최대 30%를 공제받을 수 있고, 중소기업은 최대 40%까지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R&D 시설과 생산시설을 늘리는 데 필요한 절차도 대폭 간소화한다. 수출규제 대응물질 취급시설 인허가와 기존 사업장의 영업허가 변경 신청 절차는 기존 75일에서 30일로 줄인다. 새로 개발하는 수출규제 대응물질의 경우 물질 정보와 시험계획서만 제출하면 한시적으로 먼저 제조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또한 국내에 공급망을 만들기 어려운 핵심 품목은 인수·합병(M&A)을 유도해 핵심 기술을 확보할 방침이다. M&A 인수 자금 2조5000억원 이상을 지원한다. 핵심 기술을 가진 해외 전문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전자비자 발급 기간을 기존 2주에서 3일 이내로 줄이고 소득세도 한시적으로 3년간 공제할 계획이다.
기업 간 협력 모델도 구축한다. 수요·공급기업 혹은 수요기업끼리 협력 모델을 만들면 자금과 입지, 세제, 규제특례까지 패키지로 지원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본의 수출규제 3대 품목을 포함해 주력 산업과 차세대 신산업 공급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100개 전략적 핵심 품목을 선정했다”며 “여기에 집중 투자해 5년 내 공급 안정을 이루겠다”고 강조했다.
세종=전슬기 전성필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