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대한 일본의 ‘백색국가(수출심사 우대국)’ 제외 결정과 미·중 무역갈등 심화로 한국은행 기준금리 추가 인하 기대감이 더욱 고조됐다. 8월 인하설과 함께 연내 두 차례 추가 인하, 인하폭 확대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통화위원회가 이달 30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 0.25% 포인트 추가 인하를 단행한 뒤 10월이나 11월 한 차례 더 인하에 나선다는 관측이 시장에 확산되고 있다. 금통위는 지난달 18일 회의를 거쳐 기준금리를 종전 연 1.75%에서 연 1.50%로 0.25% 포인트 낮췄다. 연말까지 남은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는 이달 30일, 10월 17일, 11월 29일 등 세 차례다.
한국이 금리 조정 방식인 현행 물가안정목표제를 도입한 1999년부터 지금까지 기준금리를 2개월 이상 연속으로 낮춘 경우는 드물다. 금융위기 대응 시기였던 2008년 10월~2009년 2월(5.25%→2.00% 5개월간 6차례 인하)을 제외하면 2001년 7~9월(5.00%→4.00% 3개월 연속 인하)이 유일하다. 당시 금통위가 2, 3개월 연속 정책금리 인하를 결정한 이유는 ‘경기 부양’이었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지난달 18일 기준금리 인하 결정을 발표하면서 밝힌 이유와 같다.
통화 당국이 과감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연내 두 차례 이상 추가 금리 인하’라는 시나리오는 한층 가능성이 높아진다. 일본의 2차 경제보복은 오는 28일쯤 실행에 옮겨질 예정이다. 금통위는 한국 경제가 받게 될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달 말 기준금리의 선제적 인하 조치를 고려할 수 있다.
지금 한국 경제에 대한 통화 당국의 인식은 2001년 하반기와 닮은 데가 많다. 2001년 6월 한은은 하반기 경제전망을 내놓으며 그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보다 1.5% 포인트 낮춘 3.8%로 발표했다. 국내 기관 중 가장 낮은 전망치였지만 한은은 그마저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봤었다. 한국 경제는 수출 부진과 교역조건 악화로 고전하고 있었다. 한은은 성장률이 2%대로 떨어지는 상황을 우려했다.
이와 비슷하게 지난달 한은은 올 하반기 경제전망을 발표하면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5%에서 2.2%로 크게 낮췄다. 같은 시기 정부가 발표한 하향 조정치 2.4~2.5%보다 0.2~0.3% 포인트 낮다. 이번에도 한은은 자신들이 내놓은 2.2%라는 수치를 멀게만 느끼고 있다. 올해는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가능성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달 이후 한국 성장률 전망치는 또 한 번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한은이 지난달 발표한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아직 계획 단계였던 일본의 수출 규제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미·중 무역협상 역시 향방을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통화 당국이 경기 급락 방어나 부양을 위해 할 수 있는 실효적 조치는 기준금리 인하가 거의 유일하다.
비상한 시기인 만큼 금통위가 기준금리 인하폭을 0.50% 포인트로 확대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콜금리 인하 석 달째였던 2001년 9월의 인하폭은 0.50% 포인트였다. 금융위기 여파 방어가 시급했던 2008년 하반기에는 최대 1.00% 포인트(12월 11일)까지 내렸다.
시장이 기준금리 인하를 예상하는 시기에 통화정책 효과를 높이는 방법은 기준금리를 선제적으로 조정하거나 조정폭을 높이는 것이다. 한은이 당초 예상보다 이른 7월에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한 것도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다만 ‘0.50% 포인트 인하’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선뜻 판단하기는 어렵다. 2001년 9월 콜금리 결정 직전에는 ‘9·11테러’라는 대형 사건이 있었다. 정책금리를 0.50% 포인트 내린 미국을 좇아 유럽과 일본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일제히 금리 인하에 나선 상황이었다.
여기에다 시장 규모가 큰 미국과의 금리 역전폭 확대도 부담으로 다가온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의 0.25% 포인트 금리 인하로 차이가 좁혀지기는 했지만 미국 통화 당국 수장이 ‘공격적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 선을 그으면서 한국도 기준금리 인하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