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8월 6일] 내 양을 먹이라

입력 2019-08-06 00:06

찬송 :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 570장(통 453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요한복음 21장 15~23절


말씀 : 전 세계 인구 17% 이상을 차지하는 가톨릭 신자는 교황을 주님의 제자 베드로의 후계자로 고백하며 따릅니다. 본문은 마태복음 16장 18~19절과 더불어 이들의 이해와 고백에 있어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개신교 성도인 우리에게도 본문은 매우 중요한 위로와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습니다. 마지막에 근심하긴 했지만 여전히 베드로는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17절) 이 고백은 좀 놀랍습니다. 첫째로 그는 얼마 전 주님을 위해 목이라도 내놓겠다고 말한 뒤 8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주님의 지근거리에서 세 번이나 그분을 부인했습니다. 두 번째로 그는 지금 주님을 만나기 전의 상태로 돌아와 있습니다. 더는 사람 낚는 어부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했으며 주님도 ‘내 양을 먹이라’고 응답합니다. 이를 부인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주님의 마음에 비수를 꽂고 동료를 모아 생업으로 돌아온 베드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1518년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마르틴 루터는 로마 가톨릭교회 신학자들과 논쟁을 벌이며 28개의 논제를 제시했습니다. 루터는 맨 마지막 논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 사랑에 맞는 대상을 찾지 않고 창조한다. 사람의 사랑은 그 사랑에 맞는 대상을 통해 생성된다.”

사람의 사랑은 사랑받을 만한 대상이 있을 때 생깁니다. 사랑스러운 자식, 내게 관심을 주는 이성, 코드가 맞는 사람을 만나 시간과 관계를 쌓으면 사랑과 정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 받을 만한 것을 찾지 않고 사랑의 대상을 창조합니다.

바닥을 친 베드로가 주님께 사랑을 고백할 수 있던 건 그를 사랑하기로 작정하고 갈릴리로 찾아온 주님의 사랑을 현장에서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부인한 사실이나 갈릴리 호수로 돌아온 것은 베드로에게 실패의 경험이었지만 동시에 주님을 향한 사랑의 깊이를 확인할 기회였습니다. 이를 경험치 않았다면 베드로는 동료들의 형은 됐을지라도 주님의 양 떼를 먹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또 초대교회 전설대로 양 떼를 먹이다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순교의 자리에 갈 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사느냐고 말입니다. 바닥을 치는 나를 다시 일으키는 그분의 사랑을 경험해야 비로소 우리는 주님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먼저 사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형편이 어떻든지 이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의 대상으로 지음 받은 사실을 붙잡고, 삶의 현장에서 이 사랑을 확인하며 사는 복이 있길 바랍니다.

기도 : 우리가 주님을 먼저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등 돌렸고 원수가 됐습니다. 선을 행하기에는 너무도 약한 존재입니다. 저희를 사랑의 대상으로 택해 지금껏 붙들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변치 않는 그 사랑을 더욱 분명히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저희로 주님을 향한 사랑을 키울 수 있게 하소서. 또 주님이 우리에게 맡긴 이웃을 섬길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십자가로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효종 목사(안성 예수사랑루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