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반대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홍콩에서 시위대가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끌어내려 바다에 던지는 일이 벌어졌다. 중국 관영 매체는 “미쳐 날뛰는 폭도”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앞서 시위대가 중국 국가 휘장을 검은색 페인트로 훼손했을 때 “일국양제의 마지노선을 건드렸다”며 군 투입 가능성까지 거론했던 중국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4일 중국 관영 환구시보에 따르면 일부 홍콩 시위대가 전날 오후 5시40분쯤 홍콩 부두의 국기게양대에 걸려 있던 오성홍기를 끌어내려 바다에 던졌다. 시위대 2명이 한자와 영어로 ‘홍콩 독립’을 새긴 깃발을 들고 국기게양대 옆에 서 있는 모습도 포착됐다.
오성홍기가 버려지자 친중단체인 ‘애항행동’ 소속 시민 10여명이 이날 자정쯤 오성홍기가 떼어진 국기게양대에 모여 새 중국 국기를 올리는 게양식을 열었다. ‘애항행동’ 관계자는 “시위대가 국기를 깃대에서 떼어내 바다에 던진 것을 알고 화가 나 다른 몇몇 시민들과 함께 자발적으로 국기게양식을 하러 왔다”고 말했다.
환구시보는 검은 복장의 시위대가 부둣가 국기게양대에 걸린 오성홍기를 끌어내리는 사진과 바다에 버려진 오성홍기가 물에 잠겨있는 모습, 친중파 시민들이 다시 오성홍기를 게양하는 사진 등을 보도했다. 신문은 오성홍기를 훼손한 시위대를 향해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는 폭도”라고 비난했다. 신문은 “오성홍기 훼손뿐 아니라 경찰서와 경찰차량 등도 불에 탔다”며 “범법행위를 저지르는 자들을 체포하는 것은 경찰의 권리이며,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경찰의 권위를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홍콩 시위대가 지난달 21일 중앙인민정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 건물의 중국 국가 휘장에 검은색 페인트를 던져 훼손하자 중국 정부는 인민해방군 개입 가능성을 거론하며 경고했다. 하지만 홍콩 시위는 수그러들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8월 첫 주말인 3일 홍콩 몽콕 지역에서 진행된 반정부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12만명이 참가했다. 시위대는 경찰서 건물에 벽돌 등을 던지고 내부에 주차된 차량 여러 대를 훼손하는 등 격렬하게 저항했고,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해산에 나섰다. 이날 몽콕과 침사추이 일대 시위 현장에서는 20명 이상이 경찰에 체포됐는데 취업비자를 받아 식당에서 일하는 20대 한국인 남성 1명도 몽콕 시위 현장에서 체포돼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시위는 4일에도 이어지면서 연락판공실 인근에 물대포까지 배치됐다. 홍콩 시위가 벌어진 이후 물대포가 투입된 것은 처음이다.
금요일인 지난 2일에는 금융인 4300여명이 홍콩 도심인 센트럴 차터가든 공원에서 집회를 여는 등 시위는 각계각층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집회에 참가한 금융인들은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홍콩을 되찾자’ ‘시대 혁명’ ‘홍콩 총파업’ 등의 구호를 외쳤다. HSBC, 스탠다드차타드, 씨티, JP모건 등 34개 금융기관 종사자 400여명은 5일 총파업에 동참하자는 온라인 청원에 서명하기도 했다. 금융인뿐 아니라 공무원과 교사, 항공 승무원, 예술가 등 각계 종사자들도 총파업에 동참해 홍콩 전역에서 동시다발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홍콩 공무원 4만여명도 3일 센트럴 차터가든 공원에서 ‘공무원도 시민과 함께 간다’ 집회를 열었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의무화한 홍콩에서 이런 집회가 열리기는 처음이다. 집회 참여 인원도 당초 예상했던 2000명을 훌쩍 넘어섰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