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국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 우대국가) 배제와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경고 발언 이후 정면충돌하고 있는 한·일 관계는 당분간 돌파구를 찾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달에만 문 대통령의 8·15 광복절 경축사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여부 통보 시한인 24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시행일인 28일 등 세 번의 큰 고비가 남아 있다. 청와대는 여전히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는 입장이지만, 양국 정부가 거친 설전을 주고받는 상황에서 극적인 반전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 2일 대통령이 일본을 향한 메시지를 발표했으니 거기에 맞춰서 당정청과 부처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할지를 발표하고 국무총리가 종합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일본에 대해) 외교적으로 해결하자는 입장은 우리가 입이 닳도록 말한 것이지만 우리도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고, 우리 기업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들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시행되는 28일까지 ‘극적 반전’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상황반과 태스크포스(TF) 가동에 힘을 쏟고 있다. 앞서 청와대는 현 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TF와 상황반을 설치했는데 상황반은 김상조 정책실장이, TF는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이 맡았다.
문 대통령이 지난 2일 일본 정부를 향해 “가해자인 일본이 적반하장으로 오히려 큰소리치는 상황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힌 이후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서도 일본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최근 사토 마사히사 일본 외무성 부대신이 문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무례하다’고 비난한 데 대해 3일 페이스북에 “차관급 인사가 상대국 정상을 향해 막말을 쏟아내는 게 과연 국제 규범에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비판했다. 최종건 평화기획비서관도 “우리는 다시는 지지 않을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한마디는 우리의 꿈과 희망을 이루기 위한 역사 선언”이라고 썼다.
한·일 정부가 1965년 수교 정상화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맞았지만 대화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게 한국 정부 입장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외교장관회의’ 이후 귀국하면서 “외교 당국 간에는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소통을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 저희의 과제”라고 했다.
특히 문 대통령의 8·15 광복절 경축사가 양국 관계의 새 분기점이 되지 않겠느냐는 기대 섞인 전망도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을 향한 협력 메시지를 빼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73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선 “아베 신조 총리와도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도 긴밀하게 협력하기로 했다. 그 협력은 결국 북·일 관계 정상화로 이끌어갈 것”이라고 했다. 한·일 정부의 정면충돌이 일정한 냉각기를 거친 뒤 광복절 전후로 새로운 돌파구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일본 정부가 계속해서 지금과 같은 강경한 기조를 이어간다면 한국 정부도 맞대응 카드를 단계적으로 꺼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임성수 최승욱 기자 joylss@kmib.co.kr